8/6 하이큐 부산 통온 Flyhigh,Cue!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E2] 99cm의 센티님(@HQ1901), 99님(@99onHq) 부스에 신세집니다.
두 분 커플링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츠키스가책을 마음좋게 허락해주신 두분께 감사드립니다()


표지는 센티님(=이든님)의 표지커미션입니다. 감사합니다!


미야자와 겐지의 '은하철도의 밤' 을 모티브로, 츠키시마랑 스가와라가 은하철도 타고 여행하는 내용입니다. 카라스노 캐릭터들도 좀 등장합니다.
선입금이나 수량조사 없이 현장판매만 할 예정입니다.

※주의
ㆍ직접적이지는 않지만 사망을 암시하는 듯한 묘사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소재가 소재인 만큼)
ㆍ편의상 츠키스가라고 쓰긴 했는데 커플링색은 매우 옅습니다…



Posted by 온 
:

마감에 성공하면 하이큐 부산통온에서 센티님네 부스에 얹혀나갈 츠키스가 원고 도입부입니다... 나 왜 이러고 있을까

미야자와 겐지의 <은하철도의 밤>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읽어보신 분은 결말을 아시겠지... 조반니-츠키시마, 캄파넬라-스가와라입니다. 안 읽으신 분은 원작의 내용누설이 될 수 있으니 가능하면 <은하철도의 밤>을 읽고 나서 보시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원작 안보셔도 읽으실 수는 있지만

해피엔딩이 아닐 예정입니다 딱히 배드엔딩 같은건 아니구 굳이 말하자면 노말엔딩...? 물론 이 포스트만 보시는 데는 엔딩 1도 상관없습니다 아마도.




1.


츠키시마 케이가 눈을 떴을 때, 기차는 덜컹덜컹 소리를 내며 달리고 있었다.

장난감처럼 자그마한, 요즘 와서는 하루에 한 번쯤 어딘가 외딴 산골 노선이나 운행할까 싶을 만큼 오래된 양식의 경편 열차였다. 천장에는 노란 전등이 줄지어 붙어 있고 푸른 우단을 씌운 긴 의자가 늘어서 있다. 흔들리는 창문 밖으로는 검푸른 밤이 펼쳐져 있었고, 간간이 주황색의 측량탑 같은 것이 스쳐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왜 이런 데 타고 있었을까. 츠키시마는 눈을 깜박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밤을 달리는 열차 안에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맞은편에 창문을 활짝 올리고 바깥으로 고개를 내민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그 모습이 어쩐지 낯이 익은 기분이 들어 츠키시마는 그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체구는 그리 크지 않다. 차림새는 평범한 하얀 반팔 셔츠에 검은 바지. 얼굴은 보이지 않아도 그 차림이 카라스노의 여름 교복이라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알아볼 수 있었다. 동시에 영문 모를, 그리움인지 초조함인지 알 수 없는 감정이 과일을 쥐어 즙을 짜내는 것처럼 가슴 속에 번진다. 지금 당장 입을 열어 무언가 말해야만 해야 할 것 같은 충동이 든다.

츠키시마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른 채 충동에 쫓겨 입을 열기 전에 먼저 그가 열차 밖으로 내밀었던 머리를 안으로 되돌렸다. 고개를 돌리다가 츠키시마와 눈이 마주치고 잠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빙긋 웃으며 말을 건넨다.


"일어났네, 츠키시마."

"…스가와라 선배."


낯이 익은 것도 당연했다. 하루에도 몇 시간씩 매일같이 얼굴을 보는 같은 배구부 선배니까. 언제나처럼 격의없는 스가와라의 태도에 조금 전까지 일렁이던 감정과 충동이 차츰 잦아들었다. 츠키시마는 작게 숨을 내쉬고 천천히 말을 골랐다.


"잠들어 버렸던 모양이네요. 죄송합니다."

"괜찮아, 괜찮아. 바깥 구경도 실컷 했고."


그렇게 말하며 스가와라는 등받이에 몸을 푹 기댔다. 검고 둥근 판을 손에 들고 장난치듯 빙글빙글 돌리며 들여다보기에 츠키시마도 호기심이 들어 그 판에 시선을 주었다. 유리처럼 반질반질 윤기가 나는 검은 판 위에 하얗게 뿌려진 은하를 따라 남쪽을 향한 가느다란 선로가 그려져 있다. 선로를 따라 역의 이름과, 창문으로 보았던 측량탑 같은 것도 새겨져 있었다. 검은 바탕 위에 푸른 숲이며 샘물 따위가 영롱한 색깔로 아로새겨진 신기하고 아름다운 지도였다.


"…지금 위치는 어디쯤인가요?"

"여기쯤이려나─. 아, 그렇구나. 자느라 지도 못 받았지?"


백조 역이라고 쓰인 부분의 조금 위쪽을 짚은 스가와라가 츠키시마를 보고 장난스레 웃었다. 츠키시마는 조금 멋쩍어져서 눈길을 피하며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열차는 강기슭을 끼고 펼쳐진 하늘억새 들판에 접어들어 있었다. 잔잔하게 흔들리는 억새밭의 은빛 물결 옆으로 은하수도 파르스름하게 물결쳤다. 츠키시마는 무심코 그 시린 빛에 정신을 빼앗겼다.

강이 너무나 투명해서 어디까지가 하늘이고 강인지 구별하기가 어려웠다. 강물은 때때로 푸르게, 하얗게, 혹은 자줏빛이나 무지갯빛으로도 반짝였다. 달빛을 반사하는 것만으로는 이런 색은 나지 않을 텐데. 츠키시마가 잔물결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 스가와라가 가르쳐 주었다.


"은하수니까 반짝이는 거야."


아아, 그렇구나. 츠키시마는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맞은편에서 숨죽인 웃음소리가 났다. 그제서야 퍼뜩 정신이 들어 츠키시마는 창밖을 보던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스가와라가 웃음을 참으려고 애쓰며 츠키시마를 보고 있었다.


"금방 잠들어 버려서 풍경엔 별 관심이 없나 했더니 그렇지도 않은가 봐."

"별로 그런 건…."


반사적으로 부정하는 말을 꺼내기는 했지만 제 생각에도 설득력이 없는 주장이라 자연히 말꼬리가 흐려진다. 스가와라는 츠키시마의 무의미한 발버둥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 즐거운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면서 "아, 용담 꽃이다." 하고 중얼거렸다. 다시 흘끗 창 너머를 보니 기슭에 한 무더기 보석 같은 보랏빛 꽃이 하늘거리고 있었다. 아직도 여름인 줄만 알았더니 어느새 가을이었던 모양이다.


"츠키시마, 꽃 좋아해?"

"…별로, 보통인데요."

"에─, 그래?"


이번엔 또 무슨 소릴 하려나 싶어 왠지 모르게 조금 방어적인 태도로 대답했더니 대뜸 불만스러운 표정이 된다. 그렇게 의외라는 표정으로 봐도 딱히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니 답을 고칠 이유도 없다. 예쁘다고 생각하지 않은 거야 아니지만, 이 나이대의 남자가 꽃에 관심이 있는 편이 더 드물지 않을까.


"스가와라 선배는 좋아하시나요?"

"음─. 용담은 예쁘지, 보라색이고."

"그렇습니까?"

"응. 꽃이 보라색이나 파란색인 거 신기하지 않아?"


이건 수긍해도 될까. 솔직하게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는 편이 나을까? 선뜻 대답하지 않는 츠키시마의 표정에서 그 망설임을 읽었는지 스가와라는 피식 웃으며 창문으로 시선을 되돌렸다.

열차는 쉼없이 하늘거리는 은빛 억새밭 사이를 달렸다. 억새밭 여기저기에 푸르고 노랗게 빛나는 삼각표가 서 있었다. 반짝이는 강물이 파르스름하게 밤을 적셨다. 점점이 선 삼각표들의 아름다운 빛이 등불처럼 깜박였다.

안개처럼 나부끼는 은빛 억새 한 무리가 열차 뒤로 사라지고 다시 하늘 강물이 펼쳐질 무렵, 문득 열차 안이 하얗게 밝아졌다.

눈부시게 빛나는 순백색의 십자가가 강 가운데 서 있었다.

강바닥은 무수한 수정을 엎어놓은 것처럼 아롱아롱 반짝였고, 수소처럼 투명한 강물이 그 위를 흐른다. 강 중간쯤에 있는 작은 섬 한가운데 그 십자가가 있었다. 금빛 구름을 후광처럼 두르고 밤하늘 가운데 난연하게 홀로 빛난다. 성화처럼 장엄하고 성광처럼 신성한 모습이었다.

츠키시마는 멈추었던 숨을 한꺼번에 크게 내쉬고서야 제가 한동안 숨조차 멈추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제야 겨우 제 몸이 제 것으로 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


그러나 숨을 돌린 것도 잠깐 뿐이었다. 간신히 십자가에서 눈을 떼고 앞을 본 츠키시마는 다시 숨을 삼켰다.

스가와라의 시선이 흰 십자가에 못박혀 있었다. 창백한 흰 빛이 그 옆얼굴을 물들인다.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호흡조차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그는 하얀 빛 안에 소금 기둥처럼 가만히 멈추어 있었다.

시간의 한 조각을 떼어 얼린 듯한 정경 속 스가와라의 표정을 도무지 무엇이라 형용하면 좋을지 츠키시마는 알 수가 없었다. 아련하게 씁쓸한, 슬픔 같기도 하고 동경 같기도 한. 열망인지 체념인지 가를 수 없는. 망연, 애상, 회심, 결의, 모든 것이기도 하며 그 무엇에도 들어맞지 않는 것 같은 찰나의 빛.

거듭 초조감이 들끓었다. 무엇을 해서든, 어떻게 해서든 그가 이쪽을 돌아보게 만들어야만 할 것 같았다. 이름을 부를까. 손을 뻗어 어깨를 잡을까. 그러나 말라붙은 것 같은 입술에서는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팔을 뻗기는 커녕 손가락 하나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 이토록 간절한데 무엇 하나 행동할 수 없는 것이 답답하고 초조해 속이 타들어가는 것만 같다. 이렇게 무력할 수가 있나.

그러나 열차가 멈추지 않는 이상 풍경은 계속 지나간다. 백조의 섬은 열차와 같은 속도로 천천히 멀어졌다. 파르스름하게 번지는 강기슭과 일렁이는 억새의 안개와 보랏빛 반딧불처럼 반짝이는 용담 꽃과 함께 점점 작아진 백조의 섬은 끝내 풀숲에 가려 보이지 않게 되었다.

창백한 빛은 완전히 물러났다. 정체했던 시간을 한꺼번에 토해내듯 스가와라가 깊은 숨을 뱉었다. 창밖을 향했던 옅은 색 눈동자가 츠키시마를 향했다. 츠키시마와 마주친 시선이 잠깐의 침묵 후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쓴웃음을 머금는 것을, 츠키시마는 그저 아득한 기분으로 바라보았다.


"왜 그런 얼굴을 하고 있어."


대체 어떤 얼굴일까. 모르긴 몰라도 아주 지독한 꼴이리라는 생각은 든다. 츠키시마는 대답 없이 시선을 내리깔았다. 끔찍하게 무거운 무력감이 손끝에서부터 차오르는 것 같았다. 그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대신 츠키시마는 다른 말을 꺼냈다.


"곧 역에 도착하겠군요."

"응. 멈추면 내려서 강에 가 볼까?"

"…저 강에도 물고기가 살까요."

"헉, 갑자기 엄청 궁금해졌잖아."


그러니까 츠키시마가 책임지고 물고기 잡아오기! 같은 소리를 하며 스가와라는 쾌활하게 웃었다.

Posted by 온 
:



1월 디페에 나올 로그호라이즌 크러시로 책 <당신을 (더) 좋아하게 되기까지의 5단계> 샘플입니다.
크러스티씨랑 사귀는데 왜 사귀는지 잊어버린 시로에가 이유를 찾으려고 고군분투(?)하는 책.
(이 될 예정)

표지는 우주달걀님(@cosmos_egg)이 만들어주셨습니다!



▼SAMPLE

뭔가 빠뜨린 기분이 드는데.
눈을 뜨는 순간부터 그런 생각이 드는 날이었다.

눈을 떴다고는 해도 아직 완전히 잠에서 깬 것은 아니다. 시로에는 일부러 게으름을 피우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필요이상으로 부지런을 떠는 성격도 아니었기에 눈뜨자마자 움직이거나 하는 부지런한 짓은 거의 하지 않는다. 아침에 느끼는 이불과 침대의 유혹이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유혹 중 하나인 것이다.
하지만 아침의 사소한 행복을 만끽하면서도 머릿속에는 정체 모를 누락에 대한 묘한 불안과 의문이 맴돈다. 오늘 해야 할 일 중에 준비를 미처 못 한 거라도 있던가? 연락사항 중에 빠뜨린 거라도 있었나, 정말로 중요한 뭔가를 잊어버리기라도 했다면 큰일인데. 시로에는 아직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로 그런 생각들을 떠올리며 이불 속에서 몸을 돌려 바로 누웠다. 조금 흐릿한 시야에 비치는 천장은 낯익은 길드하우스의 제 방은 아니었지만 낯선 것도 아니었다.

"으으으음…."

일어날까. 잘못 끼운 나사처럼 헛돌기만 하는 생각을 접어두고 시로에는 일단 침대 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따뜻한 이불에서 벗어나자 저절로 몸이 부르르 떨린다. 두 팔을 쭉 뻗어 나른한 몸을 깨우고서 슬리퍼에 발을 밀어넣으며 협탁에서 안경을 집어 썼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머리가 얼마나 엉망일지가 훤했다. 이상한 방향으로 눌리고 뻗친 머리를 손으로 대충 꾹꾹 눌러 빗으면서 시로에는 느릿느릿 문 쪽으로 향했다.

"아아, 일어났습니까."

문을 열고 슬리퍼를 끌며 방을 나선 시로에의 기척에, 다이닝 룸에 앉아 찻잔을 기울이고 있던 남자가 일어나 다가왔다. 분명 제가 일어난 것도 그리 늦은 시간이 아닐 텐데 이 사람은 대체 언제 일어나는 건지, 차림새는 실내복이지만 그 외에는 깔끔할 정도로 몸단장을 끝낸 모습이다. 막 잠에서 깬 흔적이 역력한 자신의 모습을 조금 민망해하고 있으려니, 그 속마음을 들여다본 듯 그가 쿡쿡 웃으며 시로에의 머리에 손을 댔다.

"오늘도 멋지게 까치집이군요."
"놀리지 마세요…. 지금 씻고 올 테니까."
"천천히 해도 됩니다. 아직 시간에는 여유가 있고."

그 말대로, 창밖에서 스며드는 해의 기울기는 이른 아침의 그것이었다.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움직일 정도의 여유는 있을 것 같다. 시로에는 고개를 끄덕이고 욕실로 향했다.
욕실에 놓인 제 칫솔로 이를 닦고, 얼굴을 씻고, 머리에 물을 묻혀 빗으로 머리를 정리하고. 늘 하던 대로 아침 몸단장을 하면서 시로에는 내심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막 눈을 떴을 때 느낀 뭔가를 빠뜨린 듯한 위화감이 또다시 시로에를 습격했다. 도대체 뭘까. 대체 뭘 빼먹은 걸까.
고민하는 사이에도 손을 멈추지는 않았기에 아침 준비는 얼마 지나지 않아 끝났다. 아직 이렇다 할 원인을 찾지 못한 시로에는 약간 눈썹을 찌푸렸지만, 무의미한 의문에만 정신을 쏟고 있을 여유는 없다. 시로에는 후우, 하고 길게 한숨을 쉬고 욕실을 나섰다.

조금 전의 다이닝 테이블에는 간단한 아침 식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살짝 데운 빵과 치즈, 계란 프라이, 우유를 넣고 끓인 수프. 수프는 어제 남은 것을 데운 것이겠지만 계란 프라이는 전적으로 저 사람의 작품이다. 이 집에는 본격적인 요리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주방 시설이 없을 텐데 정말이지 요령이 좋다. 적어도 시로에는 여기서 음식을 데우는 것 외의 조리를 할 자신이 없다.
마침 그릇 옆에 따뜻한 김이 피어오르는 찻잔을 내려놓은 그가 시로에를 보았다. 아까 그가 들고 있던 것과 같은 디자인의 찻잔이다.

"딱 좋은 타이밍이로군요. 다행입니다."
"그러게요…. 정말 노린 것 같은 타이밍이네요."

투덜거릴 셈은 아니었지만 매번 이 모양이니 괜히 지는 것 같은 기분이 왠지 분해서 말투가 조금 뾰족해졌다. 물론 그는 신경쓰는 기색도 부정하는 기색도 없이 빙긋이 웃으며 자리에 앉을 것을 재촉했다.

"…잘 먹겠습니다."

음식을 앞에 두고 별것도 아닌 이유로 토라져 있는 것도 어른스럽지 못한 짓이다. 시로에도 불필요한 생각은 접어 두고 식탁 앞에 앉았다.
메뉴는 간단하고 소박했지만 그래도 충분히 맛있었다. 화학조미료나 첨가물의 존재가 없는 만큼 재료 그대로의 맛이 두드러지게 된 이 세계에서의 식사를 시로에는 꽤 좋아한다. 따뜻한 수프를 마시고 빵에 치즈를 발라 입에 넣으면 풍부한 향과 식감이 감돌아, 그것만으로도 꽤나 호화로운 식사를 한 것 같은 기분이 된다.

"오후에는 비가 올 거라는 모양이더군요."
"엑, 그럼 오늘은 아키바에 못 돌아올지도 모르겠네요. 마이하마에 볼일이 있었는데."
"시로에 군도 의외로 활동 범위가 넓단 말이지요."
"의외로는 뭡니까, 의외로는. 필요한 만큼은 움직이는 게 당연하잖아요."
"뭐, 나도 며칠은 아키바를 떠나 있을 예정이니 피차 비는 조심하도록 하죠. 시로에 군은 이틀 연속 외박이 될 테니 길드에 연락하는 것도 잊지 말고."
"아─. 오늘은 토우야한테 이야기를 듣기로 했었는데."

그런 시답지도 않은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니 차가 적당한 온도로 식었을 때쯤 식사가 끝났다. 상쾌한 과일 향기가 나는 차를 입에 머금고 입 안에 감도는 끝맛을 즐기면서 느긋한 아침의 여운을 즐긴다.
이때쯤에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양쪽 모두 말이 없어진다. 그것은 언제나의 일이었지만,

─응…, 역시, 위화감.

무엇이 어떻게 이상한지는 도저히 찾아낼 수가 없지만, 그래도 무언가가 '이상하다'는 감각이 계속 시로에를 찌른다. 이 위화감의 원인은 저일까, 저 사람일까, 아니면 이도저도 아닌 어딘가 다른 곳일까. 아침의 '뭔가 빠뜨린 것 같은 느낌'과 이 위화감은 같은 것일까, 다른 것일까. 조금이라도 실마리가 있다면 더 파고들어 보기라도 할 텐데, 도대체 그 실마리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도 알 수가 없다.

"…오늘 비, 아무래도 심할 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

그는 대답하지 않고 찻잔 너머로 가만히 시로에를 보았다.

느긋한 시간은 금방 끝난다. 식사를 마치고 그릇을 정리한 후, 둘은 각각 평소의 차림으로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독립된 <존>이 아닌 이 집은 평범한 문단속이 필요하다. 문을 잠근 후 열쇠를 시로에의 손에 건네고, 며칠간 아키바를 떠나기로 되어 있는 그는 지극히 간소하게 작별 인사를 했다.

"그럼, 또 다음 번에."
"아, 네."

인사라고 할 수도 없는 대답이 되어 버렸다. 뭔가 더 해야 할 말이 있을 텐데 어째선지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시로에의 그런 불분명한 대답도 별로 신경쓰이지 않는 듯 아무렇지 않게 시로에를 일별하고 그가 가야 할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시로에는 초조한 듯 답답한 듯 애매한 기분으로 멀어져 가는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자신 이외의 누구에게 물을 수도 답을 들을 수도 없는 질문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실은 식사의 중간쯤부터 계속해서 자신에게 묻고 싶은 것이었지만 정해져 있는 답이 무서워서 필사적으로 지금까지 미뤄 온 질문이기도 했다.

Q. 나, 저 사람이랑 사귀어?

물론 답은 시로에가 어렴풋이 예상했던 것처럼 0.1초의 지체도 없이 떠올랐다. YES!
아니아니아니아니, 잠깐만. 진짜로 잠깐만 좀.




Posted by 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