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over's quarrel
시로에가 아이잭 씨한테 화난 얘기...?
B6 / 중철 / 16p. (표지/후기 포함)
"이제 그만 좀 하세요!"
그 외침은 마침내 시로에의 참을성도 한계에 다다랐다는 뜻이었다.
평소 시로에는 그다지 큰소리를 내는 편이 아니다. 화를 내기보다는 타이르는 편이고, 흥분하기보다는 생각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번만은 시로에도 화를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자신 안의 익숙지 않은 감정을 애써 다스리면서 시로에는 억누른 어조로 물었다.
"아이잭 씨는 대체 뭘 어떻게 하고 싶은 겁니까? 말로 하지 않으면 모르잖습니까."
"……."
그러나 상대의 대답은 없었다. 곤란한 듯, 난감한 듯이 버릇처럼 머리를 긁적이고 있기는 했지만 그뿐. 그 금빛 시선조차 제대로 시로에에게 향하지 않고 슬쩍 옆을 보고 있다. 변명도 해명도 없는 침묵. 하다못해 무언가 변명하는 척이라도 하면 차라리 화가 덜 날 것을, 아이잭이 묵비권이라는 최악의 수단으로 나오는 바람에 시로에는 오히려 머릿속이 차갑게 식는 기분을 맛보았다.
"……됐습니다. 설명할 생각도 없으신가 본데, 그만두죠."
"뭐?"
그 말에 비로소 아이잭이 시로에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지만 이번에는 시로에가 그를 외면했다. 싸늘해진 머릿속은 더이상 이에 관해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아우성치고 있었다. 그 충동을 실행하지 않을 이유를 찾아내지 못하고, 시로에는 떠오르는 그대로의 말을 떠오르는 그대로 내뱉었다.
"저하고 있는 게 그렇게 불편하시다면 더이상 안 만나셔도 됩니다. 회의 때에나 뵙도록 하죠."
그리고 시로에는 그대로 쌩하니 돌아서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오랜만의 휴일이었으니 아예 이대로 제 방 침대에라도 들어가서 하루 종일 빈둥거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는 차라리 잘 된 일일지도 모르지. 뒤에서는 무언가 요란하게 부딪치는 소리가 났지만 돌아보려고도 하지 않고 그런 생각을 하며 시로에는 빠른 걸음으로 <흑검기사단>의 길드 캐슬을 빠져나갔다.
분노에 맡긴 그 기세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길드 캐슬을 빠져나와서 고작 5분이나 걸었을까. 하늘은 청명하기 그지없었고 아키바의 거리는 오늘도 활기찼다. 명랑한 대화를 주고받으며 걷는 사람들이나, 노점 앞에 멈춰서서 무언가를 열심히 고르는 사람들. 쌍쌍이 팔짱을 끼고 아키바를 거니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았던가? 그런 즐거운 모습들을 보자니 오히려 맥이 탁 풀려서 시로에의 발걸음은 점점 더 느려지고 말았다.
"……쫓아오지도 않네."
나지막한 소리로 중얼거린 그런 목소리가 스스로의 귀에 들어온 순간, 시로에는 화악 혼자 얼굴을 붉히고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그런 말을 하고 나와 버렸는데 쫓아올 리가 없지.
그런 생각이 드니 숫제 걷기도 귀찮아진다. 몸이 지친 것도 아니지만 그저 움직이기가 싫어져서, 시로에는 통행인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살짝 골목길로 들어가 벽에 등을 기대고 섰다.
봄이 다가와 제법 날씨는 풀렸지만 그래도 그늘진 골목길은 아직 싸늘했다. 망토 너머로 등에 닿은 돌벽이 차갑다.
정말로 오랜만의 휴일이었는데.
아이잭도 시로에도 각자 길드를 맡은 몸이고, <원탁회의>의 일도 무시할 만한 양이 아니다. 이런저런 스케줄을 조절하다 보면 휴일이 맞는 날 따위는 한 달에 한 번 있을까말까 하다. 물론 같은 아키바 거리의 주민이니 오며가며 얼굴을 보는 정도야 그렇게 어렵지 않지만, 적어도 교제하는 두 사람에게 그 정도의 만남이 충분하다고는 하기 어려웠다.
교제……라. 시로에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 시로에가 고집스레 사무적인 어감의 교제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아직도 두 사람의 관계를 직접적인 단어로 표현하는 것이 조금 부끄럽기 때문이었다. 물론 표현을 어떻게 바꾼다 해도 본질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교제하는 사이. 사귀는 사이. 즉, 연인.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과 아이잭의 경우에 연인이나 커플 따위의 낯간지러운 표현이 어울리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사전적 의미로서는 그것이 정확했다. 그 자신의 머리카락과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새빨간 얼굴을 한 아이잭이 PvP신청이라도 하는 것 같은 말투로 시로에에게 좋아한다고 소리쳤던 것이 언제였더라.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어서 시로에도 답지 않게 허둥지둥 당황했지만, 한번 의식하기 시작하자 감정이 자라나는 것은 의외로 빨랐다. 신중한 성격의 시로에는 피어나기 시작한 감정을 속단하기를 망설였지만 아마도 주위에서 보기에는 뻔할 뻔자였겠지.
그런 우여곡절 끝에 정식으로 교제하기 시작하고서부터 아직 채 두 달도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은 간신히 시간을 맞추는 데 성공한 세 번째 휴일이었다.
"……하아."
어쩌다가 그 휴일이 이 모양이 된 걸까.
사실 징후라고 할 만한 것이라면 얼마 전부터 있었다.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칠 때나, 길드 멤버들과 함께 공중 목욕탕에 갔다가 입구에서 엇갈릴 때. <원탁회의> 전후의 짧은 시간이나, 업무와 관련된 연락이나 만남. 교제를 시작했을 무렵에는 딱히 그렇지도 않았지만 언제부턴가 매번 눈이 마주치는 횟수가 줄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물어물 눈을 피하는 정도였던 것이 어쩌다가 마주쳐도 홱 고개를 돌리는 등의 노골적인 태도로 나타난 것이 2주쯤 전부터인가. 그리고 오늘은 마침내, 함께 있는데도 좀처럼 시로에를 보려고도 하지 않고 대답조차 어딘가 건성건성인 아이잭에게 시로에가 참다못해 폭발하고 말았던 것이다.
시로에는 자신이 연애에 익숙하지 못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가까운 상대는 전부 친구나 가족이라는 카테고리에 있었기에, 연인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의 거리를 가늠하지 못해서 매사가 고민과 망설임의 연속이었다. 어쩌면 아이잭은 그 거리감을 어색하게 느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하고 시로에는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아이잭의 그런 태도를 만든 원인이 자신에게도 있다면, 마냥 화만 낼 처지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쳐다보지도 않고 계속해서 어, 어. 무슨 일 있느냐고 물어도 침묵 뿐이라는 건 심하지 않은가. 자신이 연애 초보라는 것은 아이잭도 충분히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처음부터 무언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말로 해 달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무엇을 어디까지 해도 좋은지 망설이기만 할 것이 제 생각에도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몇 번이나 물었고, 몇 번이나 대답을 기다렸는데.
아이잭은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시로에를 외면했다.
그것은 시로에의 마음 속에서 시로에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무겁고 차가운 돌덩이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그 돌이 마음이 아니라 몸까지도 무겁게 만드는 것일까. 시로에는 서있기도 힘이 들고 답답하고 슬퍼져서 천천히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벽에 등을 기댄 채 무릎 사이에 고개를 묻고, 웅크린 채로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정말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것도 모르겠다.
얼마나 그 자리에 웅크리고 있었을까. 시로에가 문득 고개를 들었을 무렵에는 어느샌가 건물 그림자 탓이 아니라 정말로 상당히 해가 기울어 사방이 어두워져 있었다. 잠이라도 들었던 걸까, 시로에는 당황해서 주저앉은 자리에서 일어나려다가 오랫동안 웅크린 탓에 제대로 다리를 움직이지 못하고 휘청 벽을 짚었다.
귓전에 낯익은 텔레파시의 착신음이 들려온 것은 그 때였다.
─어─이, 시로. 지금 어디야?
"나오츠구……."
─슬슬 저녁 준비도 다 됐는데, 이제 그만 들어오지?
"아, 응. 곧 갈게. 금방 도착할 거야."
대답하면서 서둘러 가다듬기는 했지만, 오랫동안 시로에를 알아온 나오츠구가 그 목소리에 깃든 침울한 기색을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없다. 굳이 아무것도 묻지 않고 명랑하게 재촉하고서는 금방 끊긴 텔레파시에서 시로에는 그 말없는 배려를 눈치채고 살짝 쓴웃음을 지었다. 친구와의 거리는 이렇게 자연스러운데.
아릿한 다리를 가볍게 주무르고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기지개를 켠 후, 시로에는 골목을 빠져나와 천천히 아키바 북쪽으로 향하는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냥타가 준비한 그날의 저녁 메뉴는 시로에가 좋아하는 고등어 된장찜이었다. 나가기 전에 들었던 메뉴는 다른 것이었기에 시로에는 고개를 갸웃하며 이유를 물었지만, 냥타는 가볍게 웃으며 얼버무릴 뿐 대답해 주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날 저녁. 훈련에서 돌아온 미노리가 슬쩍슬쩍 시로에의 눈치를 보며 난감한 듯이 냥타를 불렀다.
"저, 반장님."
"무슨 일이냥? 미노리."
"저기. 이걸……, 받았는데요."
미노리가 주저하는 태도로 냥타에게 내민 것은 가지가 가득 든 봉투였다. 웬 가지? 하고 시로에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냥타는 이런이런, 하고 무언가 눈치챈 듯한 미소를 짓고 가지를 받아들었다. 그날 저녁 메뉴는 가지를 넣은 카레라이스였다.
다음 날에는 나오츠구가 소금에 절인 삼치를 받아들고 돌아왔다. 아무래도 이쯤 되면 시로에도 눈치챌 수밖에 없다. 잘 구운 삼치구이를 반찬으로 저녁을 먹으면서 소년소녀들은 힐끔힐끔 시로에를 훔쳐보았고, 시로에는 미간에 깊은 주름을 새긴 채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이런 일로 길드 멤버들을 신경쓰게 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하아, 체념의 한숨을 쉬고 시로에는 마음을 정했다.
그 다음 날, 아이잭은 <기록의 지평선>의 길드 하우스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어슬렁거리는 것이 아니라 방황하고 있었다.
아이잭은 아까 거리에서 냥타와 마주쳤다. 그때 오늘치의 전할 물건을 후딱 전하려고 했지만 냥타는 오늘은 들를 곳이 있어 늦어질 예정이라며 난색을 표했다. 그렇다면 꼬맹이들이 훈련에서 돌아올 때 전해줄 수밖에 없나 하고 길드 하우스 주변까지 왔지만, 평소라면 이미 돌아올 때가 되었는데도 아무도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는 건 그 녀석, 밥도 안 먹고 이 시간까지 길드 하우스에 혼자 있는 건가. 아니, 늦어질 줄 알고 있었다면 냥타 반장이 뭔가 만들어 놓고 나갔겠지. 아무리 그래도 혼자……아니아니, 이런 생각 할 때가 아니잖아. 그런 생각을 속으로 곱씹으며 대강 스물일곱 번쯤 <기록의 지평선> 길드 하우스 주변을 빙글빙글 돈 끝에 아이잭은 마침내 마음을 정했다. 입장 제한이 없는 1층 입구에 두고 가면 누구든 돌아와서 보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아이잭은 슬그머니 문을 열고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인기척 없는 건물 안을 살피며 조심스레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이 있을 나무 뒤를 향하려던, 그 순간.
"무슨 볼일입니까?"
"으억?!"
나무 뒤에 등을 기댄 채 팔짱을 끼고 서 있던 시로에의 목소리에 아이잭은 그만 펄쩍 뛸 듯이 기겁하고 말았다.
"뭐, 뭐야. 있었냐……."
"네, 뭐. 하루종일."
아이잭은 아직도 쿵쿵 뛰는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머뭇머뭇 입을 열었지만 시로에의 대꾸는 차갑고 짤막했다. 미간은 습관처럼 찌푸리고, 표정에는 기분나쁜 기색이 역력하다. 역시 아직도 화나 있는 걸까. 사과해야 할텐데. 하지만 여기서 시로에와 마주치는 것은 상정 밖의 사태였던지라 마음의 준비도 아직이고, 게다가 이렇게 화가 나 있는 상대에게 먼저 말을 걸기란 어렵다. 아이잭은 결국 우물쭈물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걸 보는 시로에라고 마음이 편할 리가 없다. 며칠이나 슬그머니 길드 멤버들에게 이것저것 떠안기는 것을 보면 화해할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닌 것 같고, 이 이상 길드 멤버들에게 폐를 끼칠 수도 없어서 모두를 내보내고 아이잭과 마주할 상황을 만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시로에는 아이잭이 무엇 때문에 자신을 피했는지 모르고 그것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도 모른다. 저 태도로는 아무래도 아이잭이 쉽게 입을 열 것 같지도 않고. 원인이 해결되지 않고서는 또 똑같은 일이 일어날 뿐인데. 시로에는 아이잭이 한 손에 들고 있는 꾸러미를 흘깃 보고 하아, 한숨을 내쉬었다.
"우선 올라가서 얘기하죠."
"아니, 난……."
"올라오시죠?"
"……."
거울을 보지 않아도 자신의 표정이 한층 찌푸려졌을 것은 뻔했다. 여기까지 와서도 이야기를 하려고 하지 않는 아이잭에게 다시금 화가 치밀어올랐지만 시로에는 짧은 심호흡으로 감정을 다스렸다. 길드 멤버들에게 오늘은 두 시간 정도 늦게 돌아와줄 수 있겠느냐고 부탁한 것은 자신이었고, 말을 꺼낸 이상 해결은 못해도 이유는 들어야지 않겠는가.
아이잭은 포기한 듯 머리를 긁적이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시로에는 홱 몸을 돌려 2층의 제 방으로 향했다.
아이잭이 찾아올 것은 예상하고 있었기에 응접용 테이블에는 음료가 준비되어 있었다. 물론 준비되어 있다 뿐, 음료를 마실 만한 분위기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른다. 아무튼 시로에는 아이잭을 그쪽으로 안내하고 맞은편에 앉았다. 둘 사이의 분위기는 여전히 찌릿찌릿 경직된 채였다.
"내리 나흘이나 음식 재료를 떠안기다니 무슨 고양이의 보은입니까. 오늘은 뭔가요?"
"어, 그게……두부."
시로에는 살짝 눈을 치떴다. 생선이나 가지라면 몰라도 두부는 상당한 수준의 수작업을 요구하기에 지금의 아키바에서는 제법 고가다. 상하기 쉬운 음식이라 유통량도 그렇게 많지 않다. 입수하기는 상당히 어려웠을 텐데, 왜 하필이면.
거기서 문득 깨달았다. 고등어, 가지, 삼치, 두부. 다 자신이 지나가는 말로 좋아한다고 언급했거나, 함께 있을 때 먹은 적이 있는 음식이다. 설마 그래서 굳이 찾아서──.
"……일부러 사오신 건가요?"
"음……, 뭐어."
여전히 분명치 못한 말투였지만 그래도 긍정이 틀림없는 대답에 시로에는 저도 모르게 표정이 풀어지려는 것을 서둘러 다잡았다. 선물이라는 게 나흘 내리 먹을 것이라는 점이 아이잭다운 점이려나. 어떻게든 화를 풀게 하고 싶어서 생각한 것이 아마 이 방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정도라면 차라리 제대로 이유를 말할 것이지, 대체 왜 이렇게까지 굳게 입을 다무는 것인지. 그것만은 아무리 생각해도 짐작할 수가 없어서 시로에는 서글픈 기분까지 들었다. 그것은 아마 시로에가 연애에 서투르기 때문만은 아니라, 자신이 아직도 이렇게나 아이잭을 모른다는 뜻이리라. 거리를 재는 방법도, 그에게 다가가는 방법도.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이런 기분을 전해야 하는지 시로에는 모르는 것이다. 그런 자신이 더 한심하고 답답해져서 시로에는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데요……."
제대로 말해 주지 않으면 모른단 말입니다.
사라질 듯 낮은 목소리는 살짝 떨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무릎 위에 올린 손은 어느샌가 힘껏 움켜쥐어서 뼈마디가 하얗게 도드라졌다.
"야, 너 우냐?!"
"누가요!"
여기에 당황한 것은 아이잭이었다. 영 말하기가 쑥스럽고 난감해서 입을 다물었을 뿐 시로에를 곤란하게 하려던 것은 결코 아니었던 것이다. 그 탓에 화나게 만들어 버린 것도 전혀 본의가 아니었건만 설마 이렇게까지 신경쓰게 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떻게 말하면 좋단 말인가. 당황한 아이잭의 질문에 버럭 대꾸는 했으면서도 도무지 고개를 들려고 하지 않는 시로에에게 아이잭은 어쩔 줄을 모르고 허둥거렸다. 아아, 젠장!
"──어떻게 말하냐, 그런 걸!"
아이잭은 거칠게 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자포자기해서 소리쳤다.
"좋아하는 녀석이 눈앞에 있는데 아무것도 안 할 수 있을 정도로 난 성인군자가 아니라고!"
"……에?"
저도 모르게 얼빠진 얼굴로 아이잭을 올려다본 시로에의 머릿속에서 시간이 멈췄다. 순식간에 침묵이 깔린 방 안에서 귓전에 되풀이되는 반향을 멍하니 더듬어 본다. 그건, 그러니까.
"저, 그건, ……성적인……접촉을 하고 싶다는 의미인가요?"
"그걸 굳이 확인해야겠냐!?"
"아니, 그게 그러니까."
"그야 남자라면 당연하잖아! 눈앞에 있으면 만지고 싶고 손대고 싶고. 넌 그런 데에 무지하게 둔해 보이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이나 하고 있고. ……내가 속이 안 터지겠냐."
일단 입을 열자 그간 말 못하고 눌러 참던 것들이 쏟아져나오기라도 하는 것인지 아이잭은 투덜투덜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야 확실히 그런 내용이라면 말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어울리지도 않는 고민 같지만 사실은 의외로 섬세한 데가 있고 배려심이 있는 아이잭이라면 고민할 법한……일인지도 모르지. 하지만.
시로에는 가만히 고개를 아래로 향했다. 아까만큼 깊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얼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고개를 숙이는 모습에 아이잭은 역시 말하는 게 아니었다고 조금 후회했다. 그러나 그 직후 시로에가 불쑥 손을 움직여 아이잭의 앞섶을 움켜잡았다.
"……?!"
같은 레벨90이라고 해도 마법사직인 시로에의 손 정도는 아이잭이 마음만 먹으면 간단히 떨쳐낼 수 있는 것이었지만 아이잭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하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왜냐면 다음 순간, 아이잭을 제 쪽으로 힘껏 끌어당긴 시로에가 예고도 없이 아이잭의 입술에 제 입술을 부딪쳐 왔기 때문이다.
기교도 뭣도 없이 그저 닿을 뿐인 접촉이었다. 이가 부딪치지 않은 것이 용할 정도다. 서투르기 짝이 없는, 그럼에도 필사적임이 전해져 오는 입맞춤이었다.
키스해본 경험 따위는 거의 없는 것이 틀림없는 움직임으로 주저하며 아이잭에게서 떨어진 시로에는, 조금 뺨을 붉히고서도 강한 눈길로 아이잭을 쏘아보며 말했다.
"……혼자 멋대로 판단하지 말아 주세요."
"……."
"확실히 저는 둔하고 경험도 없고, 아무것도 모를지도 모르지만. 저도, 좋아하는……사람하고 닿고 싶다는 생각 정도는 합니다. ……오히려 사귀기 전하고, 아이잭 씨가 너무 다른 게 없어서 약간 불안할 정도였다구요."
후반부는 역시 부끄러웠는지 거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였지만 그래도 시로에는 확실하게 말했다. 묻지 않고 대답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당황했는지 놀란 것인지 움직이지 못한 채 시로에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아이잭을 똑바로 바라보고 시로에는 말을 이었다.
"바라는 게 있다면 똑바로 말해 주세요. 하고 싶은 건 제대로 말로 해 주세요. ……확실히 저는 서투를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계속 모르는 채로 있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이잭 씨의 말은 제대로 듣고, 제대로 생각할 겁니다."
아무 생각도 없이 당신의 마음에 답했다고 생각하지 말아 주세요. 시로에는 분명한 말투로 그렇게 선언했다.
아이잭은 굳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는 시로에의 검은 눈을 보았다. 그 시선은 도망치지 않고 똑바로 아이잭과 눈을 마주하고 있었다. 자신이 그렇게 꼴사납게 눈을 피하고 도망치는 동안에도 이 녀석은 피하는 일 없이 제대로 자신을 마주보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태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대답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녀석이 아무것도 모를 거라고 멋대로 단정하고 도망치던 자신이야말로 얼마나 한심했는지. 아이잭은 피식 웃고 말았다.
"좋아, 단단히 각오해 두라고."
이 몸의 전선 유지 능력은 서버 최강이라고 해도 좋다. 상대의 주의를 놓치는 일 따위는 절대로 없을 것이다.
그런 자신만만한 아이잭의 말에 시로에도 응답하듯 도발적으로 웃었다.
"바라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