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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무리
온
2014. 4. 3. 16:41
봄이 되면 꽃 소재를 한번은 써줘야죠(짧음
"이게 다 뭐냐?"
거리에 부는 바람에도 싱그러운 향기가 섞이기 시작한 어느 날, 평소처럼 <기록의 지평선> 길드홀에 들어선 아이잭은 익숙하게 시로에의 방 문을 열었다가 멈칫 그 자리에 발을 멈추고 말았다.
"아…. 안녕하세요, 아이잭 씨."
책상 앞에 앉아서 서류에 에워싸인 채 약간 쓴웃음을 머금고 인사를 건네는 시로에의 모습은 평소와 무엇 하나 다르지 않은 낯익은 광경이었지만, 오늘은 그것도 상당히 인상이 다르다. 시로에가 다른 것이 아니라, 이 방이 다른 것이다.
창가를 가득 메운 하얀 꽃덩굴. 낮은 소파 테이블에 놓인 자그마한 꽃병에는 좀 버거운 양이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로 엷은 핑크색 꽃가지가 수북하게 꽂혀 있었다. 항상 서류가 가득한 이 방에는 의외로 생활을 위한 가구가 적은 편이다. 당연히 꽃이 차지할 공간도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그 몇 안 되는 가구들 위나 옆 등등 조금이라도 틈이 있다 싶은 모든 곳을 작은 꽃바구니며 우묵한 접시에 올려 담은 꽃더미들이 메우고 있다. 흰색, 노란색, 분홍색. 화사한 봄 색깔들이 넘치는 방 안은 평소의 사무적인 분위기가 거짓말인 것처럼 부드러운 빛과 달콤한 향기로 가득 차 있었다.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이런 광경을 보게 되면 당혹스러운 것도 당연하다. 문간에 우뚝 서 버린 아이잭의 시선을 따라서 방 안을 한 차례 둘러본 시로에는 살짝 어깨를 움츠렸다.
"좀 안 어울리죠?"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아무리 그래도 너무 많지 않냐."
"미노리하고 이스즈가 어쩐지 잔뜩 신이 나서…. 말릴 타이밍을 놓쳤거든요."
아, 그 애들 짓인가. 아이잭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부터 이 길드하우스는 상당히 가정적인 분위기라 꽃 한두 송이 정도는 항상 꽂혀 있었기에 바로 깨닫지 못했지만 확실히 실내를 장식한 꽃들이 평소보다 훨씬 많았던 것 같다. 이 방에 유난히 가득한 것은, 항상 방에 틀어박혀 있느라 좀처럼 밖에 나가지 못하는 시로에를 위해 그 아이들이 신경을 써 준 거겠지.
"뭐, 봄이니까."
아이잭은 그렇게 대꾸하고 성큼 방 안으로 들어섰다. 달콤한 꽃향기가 짙어진다.
꽃이라고 해도 기껏해야 들판 어디에나 피어 있는 풀꽃 같은 것들이지 정원에서 가꿀 법한 화려한 것들이 아니다. 본래는 향기도 고만고만한 정도일 테지만, 양이 양이다 보니 향기의 밀도도 따라서 높아진 거겠지. 밀려드는 향기에 무심코 표정이 움직였는지 시로에가 조금 당황해서 책상 앞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아, 얘기라면 나가서…."
"아니, 여기서도 괜찮은데. 어차피 밖에도 잔뜩 있잖아?"
그것도 그렇다. 시로에는 조금 망설이면서도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아이잭은 적당히 소파 쪽으로 이동하면서 힐끗 그 책상 앞에 꽂힌 작고 귀여운 풀꽃 다발에 시선을 주었다. 딱딱한 내용만 가득한 서류와 종이더미 틈에서 혼자만 산뜻한 노란색으로 빛나고 있는 싱그러운 꽃잎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온다.
"아이잭 씨?"
"아니, 응. 이런 데 신경써 주는 여자애들이 있다는 것도 복 받은 거다, 응."
그 말에 잠깐 눈을 동그랗게 뜬 시로에는, 이내 조금 쑥스러운 듯이 웃었다.
그런 대화를 나눈 것이 지난 주의 일이었다.
그리고 아이잭은 지금 <흑검기사단>의 길드 마스터 집무실 입구에 서서 짐짓 심각한 얼굴로 방 안을 둘러보고 있었다. 팔짱을 낀 손에는 노랗고 귀여운, 자그마한 꽃무더기를 들고서.
"……흠."
아무리 둘러보아도 중후하기만 한 이 방 안에 앙증맞은 노란 꽃이 들어갈 자리는 없어 보인다. 역시 괜히 가지고 왔나. 아이잭은 머리를 긁적였다.
길드 멤버들과 사냥을 나갔다가, 들판에 한 무더기씩 피어 있는 이 노란 들꽃을 보았을 때 무심코 시로에의 책상 위에 장식되어 있던 그 꽃이 떠올랐던 것이 문제였다. 아마도 같은 꽃이리라. 꽃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해도 같은 종류인지 아닌지 구분할 정도의 눈썰미는 그에게도 있었다. 초원 곳곳에 노란 꽃더미들이 한 움큼씩 피어 있는 모습은 감수성 풍부하다고는 입이 찢어져도 말할 수 없는 아이잭에게도 어쩐지 봄을 느끼게 하는 평화로운 광경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때 이야기를 나누었던 시로에의 쑥스러운 듯한 얼굴이 떠오르는 바람에.
"……."
아이잭은 머리를 긁적이려고 손을 들어올렸다가 그 손에 꽃이 쥐어져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멈칫했다. 정말로, 이 꽃을 어쩌면 좋지? 방에 두자니 어울리지도 않는 데다가 둘 곳도 마땅치 않고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버릴 생각은 들지 않는다.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짓인 줄을 알면서도 아이잭은 천천히 꽃을 앞으로 가져와서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손톱보다도 작은 노란 꽃잎. 당장이라도 끊어져 버릴 것 같은 연약한 꽃줄기.
하지만 그것 하나로 주위가 환하게 밝아지는 것 같은 화사한 빛과 향기.
아아, 봄이구나.
아이잭은 꽃송이를 든 손을 얼굴 가까이 가져와서, 옅지만 달콤한 그 향기를 깊숙이 들이켰다.
노란색 꽃은 한 송이만 있어도 방 전체가 환하게 밝아지는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다 뭐냐?"
거리에 부는 바람에도 싱그러운 향기가 섞이기 시작한 어느 날, 평소처럼 <기록의 지평선> 길드홀에 들어선 아이잭은 익숙하게 시로에의 방 문을 열었다가 멈칫 그 자리에 발을 멈추고 말았다.
"아…. 안녕하세요, 아이잭 씨."
책상 앞에 앉아서 서류에 에워싸인 채 약간 쓴웃음을 머금고 인사를 건네는 시로에의 모습은 평소와 무엇 하나 다르지 않은 낯익은 광경이었지만, 오늘은 그것도 상당히 인상이 다르다. 시로에가 다른 것이 아니라, 이 방이 다른 것이다.
창가를 가득 메운 하얀 꽃덩굴. 낮은 소파 테이블에 놓인 자그마한 꽃병에는 좀 버거운 양이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로 엷은 핑크색 꽃가지가 수북하게 꽂혀 있었다. 항상 서류가 가득한 이 방에는 의외로 생활을 위한 가구가 적은 편이다. 당연히 꽃이 차지할 공간도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그 몇 안 되는 가구들 위나 옆 등등 조금이라도 틈이 있다 싶은 모든 곳을 작은 꽃바구니며 우묵한 접시에 올려 담은 꽃더미들이 메우고 있다. 흰색, 노란색, 분홍색. 화사한 봄 색깔들이 넘치는 방 안은 평소의 사무적인 분위기가 거짓말인 것처럼 부드러운 빛과 달콤한 향기로 가득 차 있었다.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이런 광경을 보게 되면 당혹스러운 것도 당연하다. 문간에 우뚝 서 버린 아이잭의 시선을 따라서 방 안을 한 차례 둘러본 시로에는 살짝 어깨를 움츠렸다.
"좀 안 어울리죠?"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아무리 그래도 너무 많지 않냐."
"미노리하고 이스즈가 어쩐지 잔뜩 신이 나서…. 말릴 타이밍을 놓쳤거든요."
아, 그 애들 짓인가. 아이잭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부터 이 길드하우스는 상당히 가정적인 분위기라 꽃 한두 송이 정도는 항상 꽂혀 있었기에 바로 깨닫지 못했지만 확실히 실내를 장식한 꽃들이 평소보다 훨씬 많았던 것 같다. 이 방에 유난히 가득한 것은, 항상 방에 틀어박혀 있느라 좀처럼 밖에 나가지 못하는 시로에를 위해 그 아이들이 신경을 써 준 거겠지.
"뭐, 봄이니까."
아이잭은 그렇게 대꾸하고 성큼 방 안으로 들어섰다. 달콤한 꽃향기가 짙어진다.
꽃이라고 해도 기껏해야 들판 어디에나 피어 있는 풀꽃 같은 것들이지 정원에서 가꿀 법한 화려한 것들이 아니다. 본래는 향기도 고만고만한 정도일 테지만, 양이 양이다 보니 향기의 밀도도 따라서 높아진 거겠지. 밀려드는 향기에 무심코 표정이 움직였는지 시로에가 조금 당황해서 책상 앞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아, 얘기라면 나가서…."
"아니, 여기서도 괜찮은데. 어차피 밖에도 잔뜩 있잖아?"
그것도 그렇다. 시로에는 조금 망설이면서도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아이잭은 적당히 소파 쪽으로 이동하면서 힐끗 그 책상 앞에 꽂힌 작고 귀여운 풀꽃 다발에 시선을 주었다. 딱딱한 내용만 가득한 서류와 종이더미 틈에서 혼자만 산뜻한 노란색으로 빛나고 있는 싱그러운 꽃잎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온다.
"아이잭 씨?"
"아니, 응. 이런 데 신경써 주는 여자애들이 있다는 것도 복 받은 거다, 응."
그 말에 잠깐 눈을 동그랗게 뜬 시로에는, 이내 조금 쑥스러운 듯이 웃었다.
그런 대화를 나눈 것이 지난 주의 일이었다.
그리고 아이잭은 지금 <흑검기사단>의 길드 마스터 집무실 입구에 서서 짐짓 심각한 얼굴로 방 안을 둘러보고 있었다. 팔짱을 낀 손에는 노랗고 귀여운, 자그마한 꽃무더기를 들고서.
"……흠."
아무리 둘러보아도 중후하기만 한 이 방 안에 앙증맞은 노란 꽃이 들어갈 자리는 없어 보인다. 역시 괜히 가지고 왔나. 아이잭은 머리를 긁적였다.
길드 멤버들과 사냥을 나갔다가, 들판에 한 무더기씩 피어 있는 이 노란 들꽃을 보았을 때 무심코 시로에의 책상 위에 장식되어 있던 그 꽃이 떠올랐던 것이 문제였다. 아마도 같은 꽃이리라. 꽃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해도 같은 종류인지 아닌지 구분할 정도의 눈썰미는 그에게도 있었다. 초원 곳곳에 노란 꽃더미들이 한 움큼씩 피어 있는 모습은 감수성 풍부하다고는 입이 찢어져도 말할 수 없는 아이잭에게도 어쩐지 봄을 느끼게 하는 평화로운 광경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때 이야기를 나누었던 시로에의 쑥스러운 듯한 얼굴이 떠오르는 바람에.
"……."
아이잭은 머리를 긁적이려고 손을 들어올렸다가 그 손에 꽃이 쥐어져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멈칫했다. 정말로, 이 꽃을 어쩌면 좋지? 방에 두자니 어울리지도 않는 데다가 둘 곳도 마땅치 않고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버릴 생각은 들지 않는다.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짓인 줄을 알면서도 아이잭은 천천히 꽃을 앞으로 가져와서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손톱보다도 작은 노란 꽃잎. 당장이라도 끊어져 버릴 것 같은 연약한 꽃줄기.
하지만 그것 하나로 주위가 환하게 밝아지는 것 같은 화사한 빛과 향기.
아아, 봄이구나.
아이잭은 꽃송이를 든 손을 얼굴 가까이 가져와서, 옅지만 달콤한 그 향기를 깊숙이 들이켰다.
노란색 꽃은 한 송이만 있어도 방 전체가 환하게 밝아지는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