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花無十日紅
온
2012. 6. 4. 17:46
그것은 사소한 충동이었다.
광대한 바빌로니아를 통치하는 왕 길가메쉬의 넓은 정원에는 수많은 꽃이 피어 있었다. 그것은 왕에게는 큰 의미가 없고 별다른 관심도 없는 것이어서 우르크의 정원사를 몹시 낙담하게 하였지만, 최근 그 양상에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엔키두, 왕의 벗이며 왕의 형제인, 흙에서 태어나 숲에서 자란 그가 정원을 몹시도 마음에 들어 했던 것이다. 자연히 젊은 왕도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고, 전에는 눈길도 두지 않았던 정원사의 피땀어린 결실에 그 붉은 시선이 머무는 일도 많아졌다.
이 날 왕의 눈에 든 것은 한 송이의 꽃이었다.
꽃이라기보다는 풀이라고 하는 편이 어울릴지도 모른다. 여린 잎이 곧은 꽃대를 높이 올리고, 그 끝에 작고 하얀 꽃이 매달리듯 피어 있는 것이었다. 꽃잎은 마냥 하얗지 않고 끝에 엷은 풀빛을 남기고 있었다. 노란 색의 꽃술이 하얗고 푸른 잎 속에 도드라졌다.
왕은 그 꽃을 꺾었다.
왕의 벗은 멀리 있지 않았다. 정원이 숲이 되어갈 무렵, 키가 작고 넓은 잎을 가진 나무 위에서 왕은 친구를 발견했다. 산과 숲에서 동물들과 함께 지내온 그는 여자에 의해 인간이 된 지금도 자연을 사랑했으며, 인간보다 동물들과 더 가까웠다. 이날도 그의 곁에는 작은 새들이 모여들어 아름다운 소리로 노래하고 있었다. 왕의 벗은 손을 내밀어 노란 새를 손가락 끝에 앉히고 그 지저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 새가 무엇이라 하더냐?
-나의 왕, 그대가 오고 있다 속삭였지.
새소리와도 닮은 목소리로 왕의 벗이 답했다. 맑은 녹색 눈동자가 왕을 돌아보았다. 왕이 품은 휘황한 황금의 빛과는 달리 자연과 숲 그 자체인 듯 정순한 빛을 띠는 그 색을 왕은 몹시도 기꺼워했다.
-하면 왕의 행차를 알면서도 작은 새를 희롱하기를 우선하였다는 것이더냐. 왕을 공경치 않음은 죄로다.
-이 작은 새가 왕을 찬미함을 귀여겨 듣지 않을 수가 없었으나, 왕께서 죄라 이르시면 그것은 범죄일 터. 어찌 치죄하시렵니까?
죄를 논하는 왕의 목소리에 분노의 기색은 없고, 치죄를 이르는 벗의 목소리에도 외포畏怖의 기색은 없다. 노래하듯 답하며 어떤 즐거움마저 어린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는 아름다운 벗에게 젊은 황금의 왕은 다른 누구도 본 적 없을 짓궂은 미소를 띄워 보였다.
섬려纖麗한 손가락이 풀잎의 색을 띤 친우의 머리카락을 쓸어올려, 그 매끄러운 가닥 사이에 하얀 꽃줄기를 끼워 주었다. 엔키두는 맑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오후의 햇살에 찬연히도 아름다운 그의 왕을 바라보았다.
신들이 선사한 완벽完璧한 미모가 다정하면서도 심술띤 표정으로 미소지었다.
-오늘 하루 화병花甁 노릇을 하도록 하라.
왕의 벗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머리에 꽂힌 꽃줄기를 더듬어 만져보았다. 그리고 그는 그 중성적인 미모 위에 따스한 미소를 띄웠다. 왕의 악의없는 장난에 대한 곤란이 어린, 그러면서도 상냥하고 흐뭇한 미소였다.
가냘픈 하얀 꽃은 다음 날 유리 화병에 담겨 햇볕 잘 드는 궁정의 창가에 놓였다. 엔키두가 직접 세심히 물을 갈며 보살폈지만 꺾인 꽃의 수명이 그리 길 리 없었다. 비단 같던 꽃잎이 성긴 베처럼 힘을 잃고 가느다란 꽃대가 차츰 아래로 휘어지기를 몇 날, 마침내 흰 꽃은 꽃송이를 떨어뜨리고 노랗게 말라 버렸다.
엔키두는 화병 아래 흐트러진 꽃잎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갈고 다듬어 빚어낸 조각 같은 손가락으로 꽃잎과 줄기를 그러모아 꽃이 만발한 정원에 뿌려 주었을 뿐이었다.
왕은 종에게 명해 세공 장인을 불러들였다. 순금과 보석으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을 만들도록 하라. 땅에 닿을 만큼 고개를 조아린 장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떤 꽃이기를 바라시나이까. 석류석의 눈길을 먼 곳에 향한 채, 왕은 잠시 말이 없었다.
-유아儒雅하고 청초하되 꺾이지 않고, 섬섬閃閃하고 수려하되 휘황하지 않게 하라.
그 이상의 것을 왕에게 묻는 것은 장인으로서는 불가능했다. 장인은 고개를 조아린 채로 왕의 앞에서 물러났다.
왕에게 그 꽃이 진상된 것은 석 달이라는 시간이 흐른 후였다.
금과 옥, 마노와 유리를 섞어 만든 꽃을, 왕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봄의 풀잎 같은 친우의 머리카락에 장식해 주었다.
그러나 벗의 얼굴에 그 곤란한 듯한, 상냥한 미소가 피어나는 일은 이미 없었다.
페제 태그를 달아도 되는건가 이거
광대한 바빌로니아를 통치하는 왕 길가메쉬의 넓은 정원에는 수많은 꽃이 피어 있었다. 그것은 왕에게는 큰 의미가 없고 별다른 관심도 없는 것이어서 우르크의 정원사를 몹시 낙담하게 하였지만, 최근 그 양상에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엔키두, 왕의 벗이며 왕의 형제인, 흙에서 태어나 숲에서 자란 그가 정원을 몹시도 마음에 들어 했던 것이다. 자연히 젊은 왕도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고, 전에는 눈길도 두지 않았던 정원사의 피땀어린 결실에 그 붉은 시선이 머무는 일도 많아졌다.
이 날 왕의 눈에 든 것은 한 송이의 꽃이었다.
꽃이라기보다는 풀이라고 하는 편이 어울릴지도 모른다. 여린 잎이 곧은 꽃대를 높이 올리고, 그 끝에 작고 하얀 꽃이 매달리듯 피어 있는 것이었다. 꽃잎은 마냥 하얗지 않고 끝에 엷은 풀빛을 남기고 있었다. 노란 색의 꽃술이 하얗고 푸른 잎 속에 도드라졌다.
왕은 그 꽃을 꺾었다.
왕의 벗은 멀리 있지 않았다. 정원이 숲이 되어갈 무렵, 키가 작고 넓은 잎을 가진 나무 위에서 왕은 친구를 발견했다. 산과 숲에서 동물들과 함께 지내온 그는 여자에 의해 인간이 된 지금도 자연을 사랑했으며, 인간보다 동물들과 더 가까웠다. 이날도 그의 곁에는 작은 새들이 모여들어 아름다운 소리로 노래하고 있었다. 왕의 벗은 손을 내밀어 노란 새를 손가락 끝에 앉히고 그 지저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 새가 무엇이라 하더냐?
-나의 왕, 그대가 오고 있다 속삭였지.
새소리와도 닮은 목소리로 왕의 벗이 답했다. 맑은 녹색 눈동자가 왕을 돌아보았다. 왕이 품은 휘황한 황금의 빛과는 달리 자연과 숲 그 자체인 듯 정순한 빛을 띠는 그 색을 왕은 몹시도 기꺼워했다.
-하면 왕의 행차를 알면서도 작은 새를 희롱하기를 우선하였다는 것이더냐. 왕을 공경치 않음은 죄로다.
-이 작은 새가 왕을 찬미함을 귀여겨 듣지 않을 수가 없었으나, 왕께서 죄라 이르시면 그것은 범죄일 터. 어찌 치죄하시렵니까?
죄를 논하는 왕의 목소리에 분노의 기색은 없고, 치죄를 이르는 벗의 목소리에도 외포畏怖의 기색은 없다. 노래하듯 답하며 어떤 즐거움마저 어린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는 아름다운 벗에게 젊은 황금의 왕은 다른 누구도 본 적 없을 짓궂은 미소를 띄워 보였다.
섬려纖麗한 손가락이 풀잎의 색을 띤 친우의 머리카락을 쓸어올려, 그 매끄러운 가닥 사이에 하얀 꽃줄기를 끼워 주었다. 엔키두는 맑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오후의 햇살에 찬연히도 아름다운 그의 왕을 바라보았다.
신들이 선사한 완벽完璧한 미모가 다정하면서도 심술띤 표정으로 미소지었다.
-오늘 하루 화병花甁 노릇을 하도록 하라.
왕의 벗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머리에 꽂힌 꽃줄기를 더듬어 만져보았다. 그리고 그는 그 중성적인 미모 위에 따스한 미소를 띄웠다. 왕의 악의없는 장난에 대한 곤란이 어린, 그러면서도 상냥하고 흐뭇한 미소였다.
가냘픈 하얀 꽃은 다음 날 유리 화병에 담겨 햇볕 잘 드는 궁정의 창가에 놓였다. 엔키두가 직접 세심히 물을 갈며 보살폈지만 꺾인 꽃의 수명이 그리 길 리 없었다. 비단 같던 꽃잎이 성긴 베처럼 힘을 잃고 가느다란 꽃대가 차츰 아래로 휘어지기를 몇 날, 마침내 흰 꽃은 꽃송이를 떨어뜨리고 노랗게 말라 버렸다.
엔키두는 화병 아래 흐트러진 꽃잎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갈고 다듬어 빚어낸 조각 같은 손가락으로 꽃잎과 줄기를 그러모아 꽃이 만발한 정원에 뿌려 주었을 뿐이었다.
왕은 종에게 명해 세공 장인을 불러들였다. 순금과 보석으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을 만들도록 하라. 땅에 닿을 만큼 고개를 조아린 장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떤 꽃이기를 바라시나이까. 석류석의 눈길을 먼 곳에 향한 채, 왕은 잠시 말이 없었다.
-유아儒雅하고 청초하되 꺾이지 않고, 섬섬閃閃하고 수려하되 휘황하지 않게 하라.
그 이상의 것을 왕에게 묻는 것은 장인으로서는 불가능했다. 장인은 고개를 조아린 채로 왕의 앞에서 물러났다.
왕에게 그 꽃이 진상된 것은 석 달이라는 시간이 흐른 후였다.
금과 옥, 마노와 유리를 섞어 만든 꽃을, 왕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봄의 풀잎 같은 친우의 머리카락에 장식해 주었다.
그러나 벗의 얼굴에 그 곤란한 듯한, 상냥한 미소가 피어나는 일은 이미 없었다.
페제 태그를 달아도 되는건가 이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