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이불(SS)

온  2014. 5. 19. 21:49
수위는 별거 아닌데 애프터 암시가…



아침 햇살이 밝은 손길을 커튼 너머로 부드럽게 내밀고 있었다. 게임 시절의 이펙트 사운드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생생한 새들의 지저귐과, 약간 온도가 낮지만 청결하고 상쾌한 아침 특유의 공기. 이 세계에 와서부터 아침이란 정말로 '하루의 시작'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시간이 되었다.
체력이 한계에 달했을 시로에보다 한발 먼저 일어나서 스프를 포함한 간단한 식사를 가지고 온 아이잭은 그것을 침대 옆 테이블에 내려놓고 아직도 이불을 둘둘 감은 채 눈뜰 생각을 하지 않는 시로에를 내려다보았다. 이젠 낯선 모습도 아니지만 여전히 이렇게 안경을 벗고 눈을 감고 잠들어 있는 모습은 평소 이상으로 어리고 무방비하게 보인다. 마음 같아서는 좀 더 자게 내버려 두고 싶지만 이 시간에 꼭 깨워 달라는 것은 이 녀석이 한 부탁이다. 아이잭은 톡톡 이불에 감싸인 어깨를 두드렸다.

"어이, 시로에."
"……."

대답 대신 꼭 감은 눈가가 살짝 찡그려진다.

"……깨워 달라고 한 건 너잖아. 일어나라고."
"우우……."

불분명한 소리와 함께 꾸물거리나 싶더니 이번에는 일어나는 대신 이불을 좀 더 끌어올렸다. 그대로 가슴 앞으로 당겨 모은 양팔로 이불을 한아름 끌어안고서는 아이잭한테도 좀처럼 보인 적 없는 풀어진 표정으로 이불에 뺨을 부빈다.
그 만족스럽고 행복해 보이는 표정에 아이잭은 저도 모르게 발끈했다. 이 녀석, 뭘 그렇게 행복한 표정으로 자고 있는 건데. 옆에서 깨우는 사람 속도 모르고. 게다가 따끈따끈한 사람 놔두고 왜 이불이나 끌어안는 거야. 온도라면 내 쪽이 더 높다고! 누군가 들었다면 기가 막힌 표정을 하며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을 것 같은 생각들에 제풀에 열이 뻗친 아이잭은 실력 행사에 나서기로 했다. 시로에가 뒤집어쓴 폭신하고 부드러운 이불을 두 손으로 잡고서 홱 당겨 벗겨낸 것이다.

"……에?"

갑자기 사라진 따스한 감촉과, 막 일어난 피부에는 조금 추울 정도인 바깥 공기에 시로에가 졸린 눈을 떴다. 아직 잠에 취한 머리가 사태를 파악하는 데는 3초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무, 무슨 짓입니까, 아이잭 씨!!!"
"깨웠는데 안 일어난 건 너잖아."

따뜻한 안식처에서 끌려나온 당혹과 불쾌감, 그리고 밝은 햇빛 아래 맨몸을 드러낸 부끄러움에 잠기운은 맨발로 지붕을 달려 도망쳐 버렸다. 새빨갛게 물들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우선 아이잭에게 화를 내는 시로에의 항의를 귓등으로 흘려넘기며 아이잭은 시로에를 폭 끌어안고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자신의 반 정도밖에 안 되는 게 아닐까 싶은 어깨를 감싸안고 온몸을 제 품안에 감추듯 품어 안으며 아이잭은 씨익 웃었다.

"아직도 졸리다면 더 자도 된다고."

이불은 내가 대신해줄 테니까. 아이잭의 말에 시로에는 새빨갛게 물든 채로 입만 뻐끔거리며 할 말을 찾다가 결국 아이잭의 옷자락을 움켜쥐고 얼굴을 파묻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