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ccuse……
사망 소재 및 약간의 고어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후반부 일부 세계관 설정 날조(?) 있음.
<I accuse>는 '직소'의 영문판 서명입니다()
들어 주겠습니까, 미사. 아니, 듣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나는 이미 이 편지를 쓰기 시작했고, 이것을 읽을지 읽지 않을지에 내 의사는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하겠지요. 어쩌면 당신은 이런 보고 싶지도 않은 물건을 떠넘겼다고 나를 원망할지도 모르겠군요. 원치 않는다면 읽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이것은 그저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나의 죄를 고백하기 위한 물건에 지나지 않습니다. 편의상 당신에게 남기는 편지로 작성하고는 있지만 실상은 자술서라 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유서이기도 하겠군요.
예에, 유서입니다.
지금쯤 당신은 이 종이를 구길 듯이 다시 잡았을 것 같군요. 부디 다 읽을 때까지는 이 종이의 내구도가 버텨 주기를.
냉정한 당신이라면 지금쯤 이상한 점을 발견했겠지요. <모험자>는 다시 살아나는 존재가 아닌가, 하고. 그 말대로입니다. 모험자는 죽어도 되살아나는 존재. 유서고 뭐고 있을 리가 없죠. 실은 이 유서를 쓰는 나도 실제로 내가 죽을 수 있는지 어떤지는 모릅니다. 다만 나는 죽기 위해서, 완전한 죽음을 위해 진력할 작정으로 이 편지를 쓰고 있으니 유서라는 말은 결코 틀리지 않습니다.
당신은 이유를 물을까요. 왜 그래야만 했느냐고 내게 질문할까요.
아니면, 이미 짐작하고 있습니까.
미사, 당신은 종종 나조차 미처 눈치채지 못했던 나 자신을 내 앞에 들이대어 나를 놀라게 했지요. 예에, 이번에도 당신이 옳았습니다. 당신이 나를 잘못 읽을 리 없었던 겁니다. 미사, 당신은 나라는 인간이 얼마나 굴절되어 있는지를 잘 알고 있겠지요. 나는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을 싫어하는 주제에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에 이끌리곤 합니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뒤바뀐──모두가 뒤바뀌었다고 여겼던 이 세계에서조차도 내게는 모든 것이 너무나 쉽고 지루했습니다. 차라리 게임이었던 때가 나았지요. 간단히도 모든 것이 내 뜻대로 움직이고 마는 현실 따윈 그저 따분할 뿐이었습니다. 그런 세계에서 유일하게──오로지 단 하나 내 예상을 벗어나는 존재에, 내가 끌리지 않을 리가 없었던 겁니다.
내가 그에게 품은 감정도, 바라는 바도 모두 당신이 말한 대로였습니다. 나는 그를 손에 넣고 싶고, 소유하고 싶고, 굴복시켜 지배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의 손길을, 따뜻한 한 마디를, 애정을 원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모순된 일이었는지는 굳이 말할 것까지도 없겠지요. 그는 수도 없이 내 예상을 벗어나고 내 손에서 빠져나갔습니다. 예기치 못한 순간에 내 손을 뿌리치고 예기치 못한 순간에 내게 미소를 보였습니다. 아아, 인간은 어떻게 이런 비이성적이고 비효율적이며 무르디 무른 주제에 파괴적인 충동을 가슴에 품고 살아갈 수가 있는 걸까요.
내 그리 길지 않은 인내심이 다하는 데 그다지 시간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를 완전히 손에 넣을 수 있을까. 나는 이내 그것만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잘것없는 내 자존심은, 구차하게 그가 나누어주는 온기 한 조각을 마냥 기다리고 있는 자신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겁니다. 그를 꺾어 완전히 내 아래에 둔다면 애정 역시 강제할 수 있으리라고. 하지만 그가 그인 한 내가 그를 지배할 길이 없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오로지 사람이 사람을 지배하는 것이 싫어 이 아키바를 뒤바꿔 놓은 인물. 내 희망과 그의 인물됨은 처음부터 자석의 양 끝이나 다름없었던 거죠. 그렇다면 무슨 짓을 해야 그를 꺾어 내 아래에 둘 수 있을까. 그와 내게 있어 가장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부분은 하나였습니다. 직업과 종족에 따른 스테이터스 차이.
그는 부당한 폭력을 싫어하는 인간입니다. 그는 온 힘을 다해 내게 저항했습니다. 본디 몸을 쓰는 데 익숙지 않은 그가, 힘으로도 기술로도 내게 당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전력으로 나를 거부하는 것이 어찌나 원망스러웠던지. 터무니없는 적반하장입니다만 내게는 그것이야말로 자연스러운 연상이었기에, 나는 그 보복을 가했습니다. 목을 짓누르고 호흡을 틀어막아 소리조차 양껏 낼 수 없게 된 그를 제 손 안에 가두었을 때의 충족감이란. 마침내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해 반쯤 의식을 잃어버린 그를 손 아래에 두고서 나는 떠올리고 말았던 겁니다. 그를 영원히 내게 구속할 방법을.
미사, 당신이 팔을 잃었을 때의 일을 기억하고 있습니까. 치료 주문이 듣지 않는 상처를. 이대로 그를 죽인다 해도 그는 이내 대신전으로 돌아가 되살아나고 말 테고, 그러면 다시 내 손 안에서 도망치게 됩니다. 죽이지 않더라도 그는 언제고 자살로든 <귀환 주문>으로든 내 손 안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를, 죽이지도 않고 살리지도 않은 상태로 두는 것밖에는 답이 없지 않은가. 아아, 그래. 낫지 않는 상처를 입히면. 절단되어 돌아오지 않았던 당신의 팔처럼, 신체의 일부를 절단해 버리면. 대신전에서 부활하더라도 되찾을 수 없는 신체의 일부를──가능하면 중요한 부분을.
<출혈>이라는 상태 이상은 바꿔 말하면 아물지 않는 상처를 입히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지요. 그런 효과가 있는 무기는 드물지 않고, 물론 나도 몇 개나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반쯤 의식을 잃어 몽롱해진 그를 바로 눕히고 <출혈>을 초래하는 단검으로 그의 가슴을 갈랐습니다. <모험자>란 실로 편리한 존재입니다. 현실에서라면 쇼크로 죽을 아픔이겠지요. 계속해서 감소하는 HP를 회복 물약으로 유지하면서, 나는 그의 가슴을 열어젖히고, 맥동하는 심장을 이 눈으로 보았습니다.
아아, 미사. 그 박동하는 심장이 내게 어떻게 보였을지 상상할 수 있습니까. 열어젖힌 가슴에서, 하얀 늑골 사이에서 붉게 빛나는 그 보석 같은 기관을. 이것이 그의 생명 그 자체라고 생각하니 그 심장이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나는 가슴 속에서 그의 심장을 꺼냈습니다. 회복 물약으로 그의 HP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거기까지였습니다. 치명상 판정이었을까요. 그의 몸은 내 눈 앞에서 입자로 화해 사라졌습니다만, 내 손에 움켜쥔 붉은 심장만은 아직 남아 있었습니다. 남아있다 뿐일까, 엷게나마 아직 박동하고 있었습니다. 아아, 이 귀한 심장을 어찌해야 할까.
나는 아마도, 홀린 듯이 그것을 삼켰습니다.
그래요, 내가 그의 심장을 삼켜 버린 겁니다. 대신전에서 재구성된 그가 눈을 뜨지도 입을 열지도 않는 것은 그 까닭입니다. 나는 아마도, 심장과 함께 그를 구성하는 무언가를 삼켜버린 겁니다.
이것이 희열인지 증오인지 두려움인지, 아아, 가능하다면 당신에게 판단해 달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나는 환상 속에서 몇 번이고 다시 그의 가슴을 열어젖히고, 몇 번이고 다시 그의 심장을 꺼냅니다. 심장을 잃은 그는 어떤 고통도 감정도 내게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 가슴 속에서 나는 분명히 내 것이 아닌 박동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 뜨거움과, 그 격렬함이, 이것은 결코 내 것이 될 수 없는 심장이라고 내 가슴 속에서 나에게 외치고 있습니다. 내가 빼앗은 그의 심장이 나를 지배합니다.
이것이 내가 이 편지를 쓰는 이유입니다.
미사. 내 것이 아닌 삶을 살기에 나는 너무나도 오만합니다. 그의 심장이 내 안에서 뜨겁게 맥동할 때마다, 나는 그를 소유했다는 달콤한 환혹에 희열을 느끼고 또한 그에게 지배당했다는 배덕감에 상처를 입습니다. 심지어 나는 그 두 가지 모두가 기껍기까지 합니다. 무엇 하나를 잘라낸다는 방법은──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어느 쪽도 아닌 모든 내가 외칩니다. 이토록 극단적인 감정이 어떻게 양립할 수 있을까요. 내 자존심은 이 마당이 되어서까지도 어이없을 만큼 오만하고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너절한 것입니다.
그러니, 미사. 나는 내 심장을 도려낼 겁니다. 도려내서 이 몸이 허락하는 한 먼 바다까지 걸어나가, 두 개의 심장을 그 바다에 떨어뜨릴 겁니다. 그리고 영원히 그 바다 속에서 먹고 먹히기를 계속하겠지요.
나를 죽이는 것은 다름아닌 나의 자존심입니다.
I accuse, mysel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