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운 개를 길들이는 방법. 2 - Shake
이 앞부분은 사나운 개를 길들이는 방법을 가필 수정한 내용이 됩니당. 뭐 기본적인 흐름은 그대로...인가?
Shake는 개한테 손! 하는거 그거...응...
10월 들어 첫번째의 <원탁회의>. 평소라면 하나 둘 모여든 멤버들이 자리에 앉아서 정보 교환이나 잡담 등으로 회의가 시작되기 전의 여유를 즐기고 있을 때였지만, 오늘의 회의실은 평소의 그런 여유를 까맣게 잊어버린 것 같은 긴장된 분위기였다.
아니, 긴장이라기보다는 당혹이라고 해야 할까. 모두가 입을 다물고 지금 자신들의 눈에 비치는 광경이 과연 현실인지를 의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잭 씨, 그 데이터에는 새로 추가된 정보가 있는데요."
"어, 어쩐지 본 적 없는 숫자다 싶더니."
"그 뒤에 새로운 보고가 있어서 약간 반영해 두었습니다. 그리고 이쪽은……."
"체, 뭐야. 이쪽은 필요없어진 건가. ……."
아이잭이 시로에와 회의 자료를 보면서 토론을 하고 있다.
그것도 자료 내용을 이해하고 있는 듯, 내용에 관해서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도저히 현실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미증유의 사태에 다른 참가자들은 모두 오늘 해가 서쪽에서 떴던가 달이 동쪽으로 졌던가를 의심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눈앞에 보이는 광경이 달라질 리도 없었다. 그야 아이잭에게 시로에의 서류 업무를 도울 것을 벌칙으로 정한 것은 그들이었으니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아니다. 뭐니뭐니해도 아이잭 자신이 거든 자료인 것이다. 내용을 알고 있는 것이 이상할 리는 없다. 바보가 아닌 이상 그 정도는 기억하는 게 당연하다. 그렇게 모두가 자신을 납득시키려고 애썼지만.
……그래도 이 위화감은 참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아이잭이. 단순하고 다혈질이고 성질 급한 아이잭이. 서류의 ㅅ자만 들어도 냅다 등 돌려 도망치고 그럴 시간에 몬스터 한 마리를 더 잡겠다 공언하는 아이잭이, 서류를 보고, 내용을 이야기하고, 빠진 자료를 체크하고 있다!
"과연 '능구렁이'. <흑검>도 손바닥 안이라는 거로군요."
"아니, 이 경우엔 손바닥 안이라기보다 목줄 같지 않아요?"
"푸핫, 그거냐? 테이밍 아이템?"
소곤소곤 작은 소리로 이 기이한 상황을 분석하던 생산계 3대 길드의 마스터들은 마침내 참다 못해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시로에의 자리 옆에 서서 허리를 굽히고 서류를 들여다보고 있던 아이잭이 의아한 듯 그쪽으로 눈길을 던졌지만, 자신의 행동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을 그가 그 웃음의 원인을 알 리도 없다. 반대로 시로에는 그쪽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가는지 대강 짐작이 가서 그저 서류만 들여다보며 모른 체하고 있었다. 여기서 자신까지 뭐라 말하기에는 아무래도 아이잭이 너무 불쌍하지 않은가.
거의 원탁 반대편에 앉아 있던 크러스티가 빙긋이 웃으며 고개를 든 아이잭에게 말을 걸었다.
"벌칙은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군요. 사흘로 끝났다고 들어서 너무 짧지 않은가 걱정했습니다만."
"헹, 그렇게 오래 걸릴 것 같냐. 한두 번만 해 보면 금방 익숙해진다고."
"그 쉬운 일이 지금까지 실컷 내팽개치다가 받은 벌칙이라는 시점에서 이미 그렇게 뻐길 일이 아니지 않을까요."
"시비 거냐?"
정말이지 이렇게 단순할 수가, 하며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 크러스티에게 아이잭이 왈칵 인상을 썼다. 어린애들이 보기라도 하면 당장 울음을 터뜨릴 정도로 험악한 얼굴에 험악한 공기가 주위에 떠돈다.
물론 <원탁회의> 멤버 중에 그 정도로 심약한 사람은 없었다. 주로 크러스티의 심심풀이로 시작되는 아이잭과의 신경전 정도는 그리 드물지도 않은 일이다. 사실은 거의 일상다반사이기도 했다. 대개는 크러스티가 재미삼아 슬쩍 신경을 긁고 단순한 아이잭이 발끈해서 도발에 넘어간다는 흐름이다. 원탁에 둘러앉은 멤버들은 오늘도 시작인가 싶어 흥미진진한 표정을 지었지만, 오늘은 그렇게는 되지 않았다. 크러스티를 흘긋 바라본 시로에가 폭 한숨을 쉬고 아이잭의 어깨를 덮은 두터운 갑옷을 살짝 두드린 것이다.
"아이잭 씨, 크러스티 씨는 장난을 치고 있는 것 뿐입니다. 하나하나 넘어가지 말고 그만 회의를 시작하죠."
"어, 벌써 그럴 땐가."
아이잭이 언제 발끈했냐는 듯 머리를 긁적이며 제 자리로 돌아갔다. 바로 옆자리인 크러스티를 향해서 잔뜩 얼굴을 찌푸려 보이면서도 그 이상 투닥댈 마음은 없는 모양이었다. <원탁회의>의 길드 마스터들은 잠깐 믿을 수 없는 것을 보는 듯한 얼굴을 했다가, 이내 신기한 것을 보았다는 표정으로 변했다. 저 성질 급한 아이잭이 단 한 마디로 성질을 죽이고 수긍하다니.
"……저 녀석, 서브 직업을 <조련사>로 바꾼 거 아냐?"
"그런 서브 직업 있었던가?"
"아이잭도 착한 아이니까~."
"아니,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요, 마리엘 씨."
표현은 달랐지만 모두가 떠올린 생각은 아마 똑같았을 것이다. ……길들었군, 저거.
오늘 회의의 주요한 의제는 2주 후에 열릴 '천칭제'에 관한 것이었다. 처음 기획되었던 '상품 전시회'에 대한 희망과 반향은 예상보다도 거세서 아예 규모를 확대해 '천칭제'라는 이름의 축제로 하자고 결정된 것이 바로 얼마 전의 일이었다. 그 이벤트의 주최는 <생산계 길드 연락회>였지만, 아키바에서 열리는 대규모 축제인 이상 <원탁회의>가 거기서 손을 떼고 있을 수도 없다. 이벤트를 전후해 아키바를 방문할 수많은 <대지인>들과의 조율, 그에 따른 거리의 경비 상황 조정, 부대 이벤트들의 개최 장소와 홍보 조정 등. 해야 할 일은 끝이 없었지만 그것은 흥분에 가슴이 들뜨는 즐거운 일들이기도 했다.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다 보니 회의는 평소보다도 약간 길어졌다. 시종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할 일을 배분한 끝에 마침내 회의가 일단락될 즈음에는 다들 신이 나서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축제 준비를 시작하고 싶다는 듯한 분위기였다.
크러스티가 폐회를 선언하자마자 성격 급한 몇몇은 아직 할 일도 없는데 벌써 뛰쳐나가고, 차분한 축인 사람들도 평소보다 들뜬 걸음으로 회의실을 뒤로 했다. <흑검기사단>은 딱히 생산직과는 관계가 없는 길드였기에 그렇게 들뜰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분위기에 이끌려 조금 흥이 나기 시작한 아이잭도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시로에 군. 잠깐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아, 네."
"……."
그런 소리가 귀에 들어온 것은 정말로 우연이었을 것이다. 아니, 그 크러스티니까 어쩌면 고의일지도 모르지만, 본래 <원탁회의>의 참모와 최종 책임자 역할인 두 사람이 이런 식으로 회의 후에 따로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그렇게 드문 일도 아니었다. 회의 안건을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하거나 아직 의제로 오르지는 않았지만 미리 이야기해 둘 필요가 있는 안건 등을 이야기하거나. 아이잭은 대개의 경우 회의가 끝나자마자 일찌감치 자리를 뜨곤 했기에 실제로 그런 장면을 본 적은 거의 없지만.
왜 오늘따라 그 이야기가 이렇게도 귀에 박히는 것일까? 아이잭은 스스로도 이유를 알 수 없는 가슴 속의 불만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한번 일어난 발을 멈추지도 못하고 그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아이잭이 옆을 스쳐 지나갈 때 슬쩍 입가를 끌어올려 미소를 지은 크러스티가 그를 부르지 않았다면 정말로 그렇게 했을 것이다.
"아이잭."
"엉?"
아이잭은 영문 모를 짜증을 억누르지 못한 채 불쾌한 기분으로 크러스티를 돌아보았다.
크러스티가 서 있는 자리는 회의 전에 아이잭이 있던 시로에의 옆이다. 그리고 아까와 마찬가지로 자리에 앉은 채인 시로에가, 크러스티의 부름에 무슨 일인가 싶어 서류를 넘기던 손을 멈추고 아이잭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딱히 보려던 것도 아닌데 그만 그런 시로에와 눈이 마주친 순간, 아이잭은 어째서인지 나가려던 발을 더 움직일 수 없게 되어 그만 엉거주춤하게 그 자리에 못박히고 말았다. 크러스티는 피식 웃더니 무척이나 즐거운 듯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꽤나 시로에 군이 마음에 든 모양이군요."
"뭐?"
"지금 저를 짜증난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네놈이 짜증나는 건 딱히 지금만이 아니거든."
아이잭은 혀를 차며 대꾸했다. 이 새디스트 안경이 무슨 소릴. 생각해 보면 시로에보다도 이 녀석이 훨씬 능구렁이 소릴 들어야 할 텐데, 세상은 저 겉모습에 속고 있다. 아이잭은 새삼스레 그렇게 생각했다. 아니, 그렇다고 시로에가 능구렁이가 아니라는 건 아니지만.
"그렇습니까, 유감스러운 일이로군요. 지금 시로에 군과 <세븐스 폴> 공략 시기나 멤버에 관해 이야기할까 하던 참이었는데, 그렇게 짜증난다면 동석하고 싶지는 않겠군요?"
"……."
진짜로, 이 새디스트 놈. 한번쯤 저 안경에 금이 갈 정도로 패 버리고 싶다고 아이잭은 열렬하게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아이잭은 크러스티와는 반대편 옆자리의 의자를 끌어당겨 텅 소리가 날 정도로 힘차게 걸터앉았다. 그 말없는 수긍에 크러스티는 쿡쿡 소리를 죽여 웃고, 시로에도 그만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이 사람, 때때로 이렇게 알기 쉬운 점이 귀엽단 말이지.
그렇게 해서 세 사람이 <세븐스 폴> 원정에 관한 임시 회의를 개최하게 된 셈이지만, 원정에 관한 이야기라고 해서 꼭 전투에 관한 이야기라는 법은 없는 셈이다. 그보다는 오히려 정세에 관한 이야기의 비중이 높았다. 실제로 파견을 눈앞에 두고 있다면 모를까 파견 시기를 정하기 위한 상담이니 그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예상되는 <세븐스 폴>의 전력, 그에 대응하기 위한 이쪽의 전력. <고블린>들의 움직임, 주위 부족의 움직임. 직접적으로 전투에 관련된 그런 이야기는 정말로 처음 약간 뿐이었고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것은 멤버 선정에 들어갈 정치적 배려에 관한 것들이었다. <대지인> 쪽에서 빠른 토벌을 원하고 있다든가, 체면 문제도 있으니 크러스티는 빠질 수 없다든가.
"레이네시아 공주님도 여기저기서 사정을 묻는 말을 듣는 모양입니다. 잔트리프 전투에서 겨우 한 달이 지났을 뿐인데 성질도 급하지."
"공주님 입장도 미묘하니까요. 내버려두면 아키바에 있어 공주님의 가치가 의심받겠죠. 가능한 한 그런 문제는 피하고 싶군요."
"호오. 시로에 군이라도 그 공주님에게는 약한 겁니까?"
"그건 오히려 크러스티 씨겠죠. 저는 <대지인>과의 소통 창구로서 레이네시아 공주님의 성격과 근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겁니다."
이 놈들은 언제나 이런 대화를 하는 건가. 아이잭은 듣고만 있어도 머리가 아파질 것 같았다. 그 공주가 왜? 뭐가 미묘하다는 건데. 본성이 솔직하고 단순한 아이잭은 본래도 정치나 교섭과는 거리가 먼 성격이다. 심지어 중세 서양을 배경으로 하는 <엘더테일>에서의 정치 외교 따위를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것도 시로에가 말했던 '알아둬서 손해나지는 않을 일'일지도 모르지만, 기초지식 부족은 치명적이었다. 배경을 모르는 이상 이야기는 따분해지고, 금방 질려 버린 아이잭은 손끝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려 가며 그저 듣고 흘리는 수밖에 없었다. 어째 본격적으로 공부가 필요하려나 하고 아이잭은 조금 반성했다.
"아이잭 씨. 곧 끝날 테니 잠깐만 참아 주세요."
"어, 어어."
갑자기 시로에가 말을 거는 바람에 아이잭은 화들짝 놀라 손을 멈추었다. 책상을 두드리는 소리가 문제였나, 따분해하고 있다는 것을 들킨 것 같았다. 둘 곳이 어정쩡해진 손을 책상 위에 둔 채로 괜시리 주먹을 쥔 아이잭은 먼 산을 바라보며 속으로만 한숨을 쉬었다.
언뜻 시야 한구석에서 크러스티가 피식 웃는 것이 보였다.
"……? 뭐야, 크러스티."
"아뇨, 별로. 그냥 정말 잘 길들었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길……?!"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은 아이잭은 기가 막혀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이 자식이 지금 누굴 동물 취급하는 거야? 반사적으로 길들긴 누가 길들었다는 거냐고 버럭 소리를 높이려던 아이잭은 커다란 남자들 둘 사이에 낀 시로에가 곤란한 듯이 쓴웃음을 짓는 것을 보고 그만 소리를 삼켰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행동에 더 당황했다. 왜 이 녀석을 보고 성질을 참는 건데?!
그렇게 아이잭이 이해할 수 없는 자신의 행동 때문에 짧은 패닉에 빠진 사이, 크러스티는 무언가 재미있는 것을 떠올린 듯 장난기 섞인 심술궂은 미소를 짓고 아이잭에게는 보이지 않도록 살짝 시로에에게 손짓했다. 또 무슨 짓을 떠올린 건지, 하고 생각하면서도 차마 무시하지 못하고 시로에는 살짝 크러스티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크러스티는 자신 쪽에서도 몸을 기울여 낮은 소리로 시로에에게 귓속말을 했다.
"에?"
그 귓속말의 내용이 보통이라면 떠올리지도, 실행하지도 않을 내용이었기에 시로에는 저도 모르게 의아하게 반문하고 말았다. 상식과는 동떨어져도 한참 동떨어진 권유에 시로에가 기이한 표정으로 크러스티를 올려다보고 있으려니 갑자기 시로에의 몸이 뒤로 홱 잡아당겨졌다. 무심코 흘린 목소리에 한참 자아 고찰 중이던 아이잭이 정신을 차린 모양이었다. 크러스티에게서 시로에를 떼어낸 아이잭은 한껏 인상을 찌푸리고 의심스러운 목소리로 크러스티에게 물었다.
"어이, 크러스티. 너 무슨 소릴 한 건데."
"금방 알게 될 겁니다. 그렇죠, 시로에 군?"
"아……, 으음."
시로에는 둘 사이에 끼어서 곤란한 표정을 한 채로 크러스티를 보았다가, 다시 아이잭을 보았다. 재미있다는 표정을 숨기려고도 하지 않고 웃고 있는 크러스티와, 잔뜩 찌푸린 얼굴로 그런 크러스티를 노려보는 아이잭. 으음, 시로에는 고민했다. 이건 아무래도 크러스티가 속삭인 말을 실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 같다.
요 며칠 사이에 아이잭과의 거리가 꽤 줄어든 것 같다고는 스스로도 생각한다. 일단 어느 정도 친해지고 나면 본성이 솔직한 아이잭은 꽤 대하기 쉬운 상대였다. 이유만 납득할 수 있다면 순순히 고개를 끄덕여 주는 것이다. 그것이 어쩐지 큰 개를 길들인 것 같은 느낌이라고 스스로도 생각하고는 있었지만……크러스티한테 그런 소리를 들을 만큼 누가 봐도 길들어 있는 걸까. 약간 곤혹한 표정을 띤 채로 시로에는 조금 망설이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 아이잭 앞에 손을 내밀었다.
"아이잭 씨, 손."
"엉? 어."
침묵이 원탁 주위를 점거했다.
견디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만 것은 크러스티였다. 입가를 꾹 누른 채로 고개를 돌리고 어깨를 부들부들 떨고 있는 모습은 틀림없이 대폭소다. 소리는 최소한으로 억누른 채였지만 그럼에도 간간이 새어나오는 웃음소리는 평소의 크러스티에게서는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어서 시로에는 이런 상황에도 조금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즉, 현실 도피 중이었다는 얘기다.
한 박자 늦게 폭발한 것은 당연하게도 아이잭이었다.
"……너 임마, '능구렁이'!"
"아니, 저도 설마 아이잭 씨가 진짜로 할 줄은……. 그보다 진짜로 있네요, 이런 거에 걸려드는 사람."
"지금 내가 단순하다고 말하고 싶은 거냐?!"
무심결에 덧붙인 감상은 아이잭의 신경을 더 거스른 모양이었다. 그럴 생각은 아니었지만 시로에도 정말로 당황해서 뭐라고 말하면 좋을지 알 수 없는 상태였던 것이다. 크러스티가 일부러 귓속말로 속삭인데다가 어쩐지 아이잭을 부추기는 것 같은 말투로 말하는 바람에 실행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된 것도 곤란했는데. 이 상황을 알고 초래했을 것이 분명한 크러스티를 슬그머니 원망 섞인 시선으로 노려보아도, 그는 아직도 웃음을 다 수습하지 못한 채 이쪽을 돌아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웃느라 정신이 없는 크러스티와 으르렁대며 화를 내고 있는 아이잭. 이거야말로 앞에는 호랑이 뒤에는 늑대라는 상황인 걸까. 시로에는 성가신 이 두 사람 사이에 끼어 있느니 차라리 철야 서류 작업이 더 나을 것 같다고 피곤한 눈가를 누르면서 다시금 어깨를 깊이 늘어뜨리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