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y Biscuit
카테고리 없음 2015. 1. 11. 23:07 |커플링은 크러스티x시로에입니다.
크러스티 씨랑 시로에가 쿠키 먹는 얘기.
이 세계에서 쿠키를 만든다는 것은 상당한 고행이다. 밀가루며 설탕, 우유, 버터에 초콜릿. 재료를 갖추는 데만도 상당한 돈이 들고, 재료가 갖춰지면 이번에는 계량이라는 관문이 기다린다. 베이킹의 생명이라고까지 하는 계량이지만 전자 저울 따위의 편리한 물건이 이 세계에 있을 리도 없으니, 이 세계에서의 요리사들은 날마다 추를 올린 양팔저울과 격투하며 신중하게 재료를 계량해야 했다. 그렇다고 계량을 다 해내면 쿠키가 뚝딱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반죽을 섞는 데, 장식할 크림을 마련하는 데도 팔이 빠질 것 같은 중노동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왜 현실 세계의 파티셰 중에 남자가 많은지, 여기에 와서 요리사들은 그 이유를 몸으로 체험하게 되었다. 현실 세계의 핸드믹서가 그리워지는 것도 당연하다.
자연히 이런 달콤한 과자들에는 상당히 높은 가격이 붙게 되었다. 노동량으로만 따져도 모든 과자가 일류 호텔급 수고를 들여 만들어지는거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모두들 그런 사실은 잘 알고 있으니 가격 설정이 비싸다고 해서 특별히 불만을 표시하는 일도 없고, 애당초 아키바 거리의 모험자들은 상당히 부유하다. 맛있는 음식에 적합한 가격을 지불하기를 아까워하는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
그런 연유로 지금의 아키바에서는 상당한 고급품으로 분류되는 쿠키였지만──요 며칠간, 특정한 어떤 쿠키의 판매량이 기하급수적으로 치솟고 있었다.
문제의 쿠키는 다해서 11종류. 한 다스도 아니고 10개도 아닌 실로 미묘한 숫자다. 물론 낱개로도 구입할 수 있고, 세트로 구입하면 약간 할인을 받는다고 한다. 맛은 제법 괜찮다는 모양이지만 그럭저럭 홈메이드 레벨이라는 정도일까. 연유와 크림을 듬뿍 넣어서 씹는 맛이 부드럽다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고, 가격 역시 지금의 아키바에서는 평범한 수준.
이런 평범한 쿠키의 최대의 인기 비결은 바로 그 디자인에 있었다.
"원탁 쿠키 2세트 주세요!"
"여기, 소지로 쿠키 3개요."
"세트 하나랑, 크러스티 쿠키랑 아이잭 쿠키 2개씩이요!"
밖으로 낸 작은 가게 앞의 소란스러운 광경을 크러스티는 뭐라고도 말할 수 없는 복잡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렇다, 그 쿠키의 인기 비결이란──아키바의 자치 기구, 원탁회의를 구성하는 11길드의 길드 마스터들을 본뜬 디자인이었던 것이다.
타카야마 미사가 티타임에 가져온 그 쿠키의 모습에 크러스티는 정말로 마시던 차를 뿜을 뻔 했다. 고운 색깔로 먹음직스럽게 구워진, 개인의 특징을 놀랍도록 완벽하게 본뜬 실루엣. 그 위에 초콜릿으로 그려넣은 각진 안경. 한눈에 자신이라고 알 수 있는 디자인의 나름대로 귀여운 쿠키가 6개나 하얀 접시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광경은, 모델이 된 당사자에게는 조금 복잡하고 미묘하고 상당히 떨떠름한 기분을 불러일으켰다.
"이건 뭡니까, 미사."
"쿠키입니다만."
"기분 탓이 아니라면 나를 본뜬 걸로 보이는데요."
"기분 탓이겠죠. 요즘 인기있는 원탁 쿠키입니다. 매상 No.1은 소지로 쿠키라더군요."
"……기왕 모르는 척 할 생각이었다면 끝까지 모르는 척 해 주지 않겠습니까?"
완전히 모순된 그녀의 대답에 크러스티는 미간을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미사는 태연하게 차를 한 모금 마시고 크러스티 쿠키를 집어들더니, 머리부터 덥석 깨물었다. 안경 부분이 와삭 소리를 내며 깨졌다.
그 광경을 머릿속에서 다시 떠올린 크러스티는 무심결에 부르르 어깨를 떨었다. 별로 쿠키의 디자인 따위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불평할 생각은 없지만 그때 그녀의 기세는 조금 무서웠다.
뭐, 어찌 됐든 쿠키 하나라도 그녀의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면 나름대로 좋은 일이 아닐까. 자신의 행실을 반성할 마음 따윈 손톱만큼도 없이, 크러스티는 그 소문의 쿠키에 대한 호기심에 가게를 찾아가기로 했던 것이다.
과연 최근 인기몰이를 하는 가게답게 요란스레 성업 중이다. 이렇게 사람이 많아서야 구경하기도 여의치 않을 것 같다. 크러스티는 가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턱에 손을 대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라, 크러스티 씨?"
"……시로에 군?"
문득 그를 부르는 낯익은 목소리에 크러스티는 조금 놀란 얼굴을 했다. 일차적으로는 이런 시간에 이런 곳에서 듣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던 목소리였기 때문에, 그리고 2차적으로는 그 품에 안긴──쿠키가 가득 든 종이 봉투 때문에.
"시로에 군도 저 쿠키를 사러 온 겁니까?"
"도, 라는 건 크러스티 씨도 사러 갈 생각이셨다는 건가요."
시로에는 고개를 갸웃하고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
"그건 곤란한데요. 원탁회의 의장이 몸소 소문의 쿠키를 사러 행차했다는 소문이라도 났다가는 원탁회의가 저 가게의 행위를 공인한 셈이 돼 버립니다. 이런 건 암묵적 이해 하에 행해져야 하는 법이죠."
"그러는 시로에 군은 한아름이나 안고 있는데도?"
"저는 가게 근처의 대지인 분한테 부탁했으니까요."
호오, 그런 방법이. 크러스티가 좋은 정보를 들었다는 듯이 눈을 빛내는 바람에 시로에는 그만 한숨을 쉬고 말았다.
"호기심이라면 제가 산 걸 나눠드릴 테니 그걸로 참아주시죠. 대지인 분들한테도 크러스티 씨는 유명인입니다. 누구한테 부탁하더라도 순식간에 소문이 나고 말 걸요."
"그래도 됩니까?"
"보시다시피 잔뜩 샀으니까요. 마침 시간도 적당하니, 저희 길드하우스에서 차라도 한 잔 하고 가시는 건 어떨까요?"
그건 바라마지 않던 초대다. 크러스티는 두말없이 시로에의 제안을 승낙했다.
"……이건 뭡니까?"
"알고 사러 오신 게 아니었나요?"
의아한 듯이 고개를 갸웃하며 시로에는 쿠키를 한 입 깨물었다. 머리 한쪽과 초콜릿 안경 일부가 부서져 나갔다. …역시 그 가게, 판매 중지를 요청하는 게 좋지 않을까. 크러스티는 옆에 앉아 오물오물 쿠키를 먹는 시로에를 보며 뭐라 말할 수 없는 복잡한 기분에 대꾸할 말을 잃고 말았다.
<기록의 지평선> 길드 하우스에 도착하자 시로에는 차를 가지고 오겠다며 크러스티에게 먼저 방에 들어가 있으라고 말했다. 이 길드 하우스의 구조에는 이미 익숙한 크러스티도 별 생각 없이 그러마고 끄덕이고 주인 없는 방을 제멋대로 구경하기를 5분, 시로에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티세트와 함께 가지고 온 넓은 접시 위에는──크러스티도 본 적이 있는 초콜릿 안경을 쓴 바로 그 쿠키가 가득히 늘어서 있었던 것이다.
"너무 달지 않아서 이게 제일 낫더라고요."
"……그런 이유입니까?"
저도 모르게 어깨를 축 늘어뜨리는 크러스티를 보고 시로에는 무엇을 생각했는지, 살짝 장난스러운 미소를 띄웠다.
"크러스티 씨. 이 쿠키가 인기있는 이유를 아시나요?"
"그야…, 원탁회의 멤버들을 본뜬 형태가 신기해서가 아닙니까?"
"쿠키를 선호하는 건 대부분의 경우 여성 쪽이지만, 이 쿠키를 구입해 가는 손님들 중에는 남성 비율도 꽤 높거든요. 왜라고 생각하시나요?"
거기에는 짚이는 데가 있었다. 대담하게도 당사자 앞에서 깊은 원한이라도 담긴 듯 쿠키를 분쇄하던 모습을 떠올려 보면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는 것이다.
"……짐작이 가는군요. 저주 인형 대신입니까."
"아, 혹시 타카야마 여사인가요."
떨떠름한 표정의 크러스티에게서 그가 말하지 않은 사정까지 짐작한 시로에는 작게 웃었다. 확실히 이런 규격외의 상관을 바로 옆에서 보좌하는 그녀에게는 여러 가지로 맺힐 만한 일이 많을 터다. 그러니 저도 모르게 쿠키에 화풀이를 하고 싶어진다고 해도 전적으로 그녀를 탓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그녀의 경우야 어쨌건 적어도 연인인 시로에에게까지 그런 취급을 받는 것은 정말이지 크러스티의 본의가 아니었으므로, 그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남은 쿠키를 입에 넣으려는 시로에의 손목을 잡아당겼다. 붙잡은 시로에의 손을 제 앞으로 가져와서는 남은 쿠키 조각을 입에 넣고, 하는 김에 손가락에 남은 쿠키 가루까지 핥는다. 미사가 내밀었던 쿠키는 그저 지극히 평범한 맛의 버터 쿠키였을 뿐인데 시로에가 먹던 쿠키는 묘하게 달착지근한 맛이 났다. 거기에 약간이나마 기분이 풀려서, 크러스티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쪽을 올려다보는 시로에를 향해 피식 미소짓고는 잡았던 손을 놓아주지 않은 채 그를 슬쩍 밀어 소파 위에 쓰러뜨렸다.
"그래서, 시로에 군이 이 쿠키를 산 것도 그런 용도입니까?"
혹시 그렇다고 말한다면 아무리 나라도 상처받을 겁니다, 하고 크러스티는 심술궂은 표정으로 슬쩍 시로에를 내려다보며 붙잡은 손등에 입술을 가까이 했다.
시로에는 잠깐 동안 눈을 깜박이며 크러스티를 올려다보고 있었지만, 이내 풋 하고 웃어버렸다. 어쩐지 토라진 대형견이 옷자락을 물고 잡아당기는 광경이 크러스티의 모습에 겹쳐 떠오른다. 자신의 터무니없는 연상에 웃음을 참으며, 시로에는 두 팔을 올려 크러스티의 목을 끌어안았다.
"……그럴 리가 없잖아요."
짧게 숨을 내쉬고, 시로에는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무리 과자일 뿐이라도, 그냥…, 다른 사람들이 크러스티 씨 쿠키를 화풀이 삼아 먹어치우는 건 별로 보고 싶지 않았을 뿐입니다."
저거, 그 가게에 남아 있던 오늘 분의 크러스티 씨 쿠키 전부니까요. 쑥스러운 듯 속삭이는 말에 크러스티는 눈을 크게 뜨고 시로에를 보았다. 말해 놓고는 부끄러워졌는지 크러스티에게 꼭 매달려 얼굴을 감추는 시로에의 귓가가 아까보다 빨갛다.
"시로에 군."
"예?"
"시로에 군이 이 쿠키를 대량 구입한 기분도 비슷한 거라고 생각합니다만……이쪽도, 누군지 모를 사람이 시로에 군을 본뜬 쿠키를 먹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어쩐지 화가 치미는군요."
"에, 크러스티 씨…?"
"하지만 입장상 그 가게의 독자적인 상품권을 침해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쯤 되니 크러스티가 하려는 말을 좀처럼 이해할 수가 없어져서 시로에는 무심코 고개를 들고 말았다.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든 시로에와 눈을 마주치고 크러스티는 싱긋이, 그야말로 산뜻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이 인내심의 보상으로, <실물>을 주지 않겠습니까?"
엑, 하고 이번에야말로 당황한 시로에가 크러스티의 목에 매달렸던 팔을 풀고 서둘러 떨어지려고 했지만 재빨리도 시로에의 등에 팔을 두른 크러스티는 물론 시로에를 놓칠 마음이 없었다. 이렇게 되면 잠깐 뿐이었을 티타임이 연장되는 것은 자명한 이치.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법이라는 진리를, 시로에는 새삼스럽게 되새기고야 마는 것이었다.
여담이지만 그 쿠키는 차후에 원탁회의 측의 요청으로, 아주 노골적이지 않은 정도로 디자인과 명칭이 변경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