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디페에 나올 로그호라이즌 크러시로 책 <당신을 (더) 좋아하게 되기까지의 5단계> 샘플입니다.
크러스티씨랑 사귀는데 왜 사귀는지 잊어버린 시로에가 이유를 찾으려고 고군분투(?)하는 책.
(이 될 예정)

표지는 우주달걀님(@cosmos_egg)이 만들어주셨습니다!



▼SAMPLE

뭔가 빠뜨린 기분이 드는데.
눈을 뜨는 순간부터 그런 생각이 드는 날이었다.

눈을 떴다고는 해도 아직 완전히 잠에서 깬 것은 아니다. 시로에는 일부러 게으름을 피우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필요이상으로 부지런을 떠는 성격도 아니었기에 눈뜨자마자 움직이거나 하는 부지런한 짓은 거의 하지 않는다. 아침에 느끼는 이불과 침대의 유혹이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유혹 중 하나인 것이다.
하지만 아침의 사소한 행복을 만끽하면서도 머릿속에는 정체 모를 누락에 대한 묘한 불안과 의문이 맴돈다. 오늘 해야 할 일 중에 준비를 미처 못 한 거라도 있던가? 연락사항 중에 빠뜨린 거라도 있었나, 정말로 중요한 뭔가를 잊어버리기라도 했다면 큰일인데. 시로에는 아직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로 그런 생각들을 떠올리며 이불 속에서 몸을 돌려 바로 누웠다. 조금 흐릿한 시야에 비치는 천장은 낯익은 길드하우스의 제 방은 아니었지만 낯선 것도 아니었다.

"으으으음…."

일어날까. 잘못 끼운 나사처럼 헛돌기만 하는 생각을 접어두고 시로에는 일단 침대 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따뜻한 이불에서 벗어나자 저절로 몸이 부르르 떨린다. 두 팔을 쭉 뻗어 나른한 몸을 깨우고서 슬리퍼에 발을 밀어넣으며 협탁에서 안경을 집어 썼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머리가 얼마나 엉망일지가 훤했다. 이상한 방향으로 눌리고 뻗친 머리를 손으로 대충 꾹꾹 눌러 빗으면서 시로에는 느릿느릿 문 쪽으로 향했다.

"아아, 일어났습니까."

문을 열고 슬리퍼를 끌며 방을 나선 시로에의 기척에, 다이닝 룸에 앉아 찻잔을 기울이고 있던 남자가 일어나 다가왔다. 분명 제가 일어난 것도 그리 늦은 시간이 아닐 텐데 이 사람은 대체 언제 일어나는 건지, 차림새는 실내복이지만 그 외에는 깔끔할 정도로 몸단장을 끝낸 모습이다. 막 잠에서 깬 흔적이 역력한 자신의 모습을 조금 민망해하고 있으려니, 그 속마음을 들여다본 듯 그가 쿡쿡 웃으며 시로에의 머리에 손을 댔다.

"오늘도 멋지게 까치집이군요."
"놀리지 마세요…. 지금 씻고 올 테니까."
"천천히 해도 됩니다. 아직 시간에는 여유가 있고."

그 말대로, 창밖에서 스며드는 해의 기울기는 이른 아침의 그것이었다.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움직일 정도의 여유는 있을 것 같다. 시로에는 고개를 끄덕이고 욕실로 향했다.
욕실에 놓인 제 칫솔로 이를 닦고, 얼굴을 씻고, 머리에 물을 묻혀 빗으로 머리를 정리하고. 늘 하던 대로 아침 몸단장을 하면서 시로에는 내심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막 눈을 떴을 때 느낀 뭔가를 빠뜨린 듯한 위화감이 또다시 시로에를 습격했다. 도대체 뭘까. 대체 뭘 빼먹은 걸까.
고민하는 사이에도 손을 멈추지는 않았기에 아침 준비는 얼마 지나지 않아 끝났다. 아직 이렇다 할 원인을 찾지 못한 시로에는 약간 눈썹을 찌푸렸지만, 무의미한 의문에만 정신을 쏟고 있을 여유는 없다. 시로에는 후우, 하고 길게 한숨을 쉬고 욕실을 나섰다.

조금 전의 다이닝 테이블에는 간단한 아침 식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살짝 데운 빵과 치즈, 계란 프라이, 우유를 넣고 끓인 수프. 수프는 어제 남은 것을 데운 것이겠지만 계란 프라이는 전적으로 저 사람의 작품이다. 이 집에는 본격적인 요리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주방 시설이 없을 텐데 정말이지 요령이 좋다. 적어도 시로에는 여기서 음식을 데우는 것 외의 조리를 할 자신이 없다.
마침 그릇 옆에 따뜻한 김이 피어오르는 찻잔을 내려놓은 그가 시로에를 보았다. 아까 그가 들고 있던 것과 같은 디자인의 찻잔이다.

"딱 좋은 타이밍이로군요. 다행입니다."
"그러게요…. 정말 노린 것 같은 타이밍이네요."

투덜거릴 셈은 아니었지만 매번 이 모양이니 괜히 지는 것 같은 기분이 왠지 분해서 말투가 조금 뾰족해졌다. 물론 그는 신경쓰는 기색도 부정하는 기색도 없이 빙긋이 웃으며 자리에 앉을 것을 재촉했다.

"…잘 먹겠습니다."

음식을 앞에 두고 별것도 아닌 이유로 토라져 있는 것도 어른스럽지 못한 짓이다. 시로에도 불필요한 생각은 접어 두고 식탁 앞에 앉았다.
메뉴는 간단하고 소박했지만 그래도 충분히 맛있었다. 화학조미료나 첨가물의 존재가 없는 만큼 재료 그대로의 맛이 두드러지게 된 이 세계에서의 식사를 시로에는 꽤 좋아한다. 따뜻한 수프를 마시고 빵에 치즈를 발라 입에 넣으면 풍부한 향과 식감이 감돌아, 그것만으로도 꽤나 호화로운 식사를 한 것 같은 기분이 된다.

"오후에는 비가 올 거라는 모양이더군요."
"엑, 그럼 오늘은 아키바에 못 돌아올지도 모르겠네요. 마이하마에 볼일이 있었는데."
"시로에 군도 의외로 활동 범위가 넓단 말이지요."
"의외로는 뭡니까, 의외로는. 필요한 만큼은 움직이는 게 당연하잖아요."
"뭐, 나도 며칠은 아키바를 떠나 있을 예정이니 피차 비는 조심하도록 하죠. 시로에 군은 이틀 연속 외박이 될 테니 길드에 연락하는 것도 잊지 말고."
"아─. 오늘은 토우야한테 이야기를 듣기로 했었는데."

그런 시답지도 않은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니 차가 적당한 온도로 식었을 때쯤 식사가 끝났다. 상쾌한 과일 향기가 나는 차를 입에 머금고 입 안에 감도는 끝맛을 즐기면서 느긋한 아침의 여운을 즐긴다.
이때쯤에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양쪽 모두 말이 없어진다. 그것은 언제나의 일이었지만,

─응…, 역시, 위화감.

무엇이 어떻게 이상한지는 도저히 찾아낼 수가 없지만, 그래도 무언가가 '이상하다'는 감각이 계속 시로에를 찌른다. 이 위화감의 원인은 저일까, 저 사람일까, 아니면 이도저도 아닌 어딘가 다른 곳일까. 아침의 '뭔가 빠뜨린 것 같은 느낌'과 이 위화감은 같은 것일까, 다른 것일까. 조금이라도 실마리가 있다면 더 파고들어 보기라도 할 텐데, 도대체 그 실마리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도 알 수가 없다.

"…오늘 비, 아무래도 심할 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

그는 대답하지 않고 찻잔 너머로 가만히 시로에를 보았다.

느긋한 시간은 금방 끝난다. 식사를 마치고 그릇을 정리한 후, 둘은 각각 평소의 차림으로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독립된 <존>이 아닌 이 집은 평범한 문단속이 필요하다. 문을 잠근 후 열쇠를 시로에의 손에 건네고, 며칠간 아키바를 떠나기로 되어 있는 그는 지극히 간소하게 작별 인사를 했다.

"그럼, 또 다음 번에."
"아, 네."

인사라고 할 수도 없는 대답이 되어 버렸다. 뭔가 더 해야 할 말이 있을 텐데 어째선지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시로에의 그런 불분명한 대답도 별로 신경쓰이지 않는 듯 아무렇지 않게 시로에를 일별하고 그가 가야 할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시로에는 초조한 듯 답답한 듯 애매한 기분으로 멀어져 가는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자신 이외의 누구에게 물을 수도 답을 들을 수도 없는 질문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실은 식사의 중간쯤부터 계속해서 자신에게 묻고 싶은 것이었지만 정해져 있는 답이 무서워서 필사적으로 지금까지 미뤄 온 질문이기도 했다.

Q. 나, 저 사람이랑 사귀어?

물론 답은 시로에가 어렴풋이 예상했던 것처럼 0.1초의 지체도 없이 떠올랐다. YES!
아니아니아니아니, 잠깐만. 진짜로 잠깐만 좀.




Posted by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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