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플링관

카테고리 없음 2012. 6. 19. 12:30 |
남의 커플링에 왈가왈부할 계제는 아니지만 난 아무래도 페제 커플링에 달콤한 종류의 애정이 들어가는 걸 못 보는 모양이다. 대놓고 달달해도 되는건 엔키길엔키까지입니다. 거긴 세상 모든 종류의 달달함과 설탕과 시럽과 꿀을 처부어도 됩니다. 나머지에 애정... 음... 구검x구금 정도라면 가능하려나. 물론 이쪽은 왈왈컹컹 짖어대는 구금이를 구검 왕님이 상큼하고 자애돋게(+고의적 눈새짓으로) 스루하는 종류의 달달함이지만. 구검x현금이요? 왕님에게 엔키두 이외에게 나눠줄 달달함이 있을 리 없어.
그렇게 이리저리 곱씹다 보니 내 커플링은 엔키길 베이스에 언금을 끼얹고 가끔 이스길을 토핑하는 무언가의 번데기가 된 듯한 기분이 듬. 이중 하나만 고르라니 그런거 불가능합니다. 엔키길은 왕님 성격형성의 베이스고 언금은 페제의 정체성이며(?) 이스길은 내 취향이니까/당당

최애가 왕님이다 보니 아무래도 왕님 위주로 생각하게 되는데, 전에도 이미 썼지만 왕님에게 엔키두는 정말로 '둘도 없는 존재'. 다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고 비교되어서도 안 된다. 자신이 유일무이한 왕인 만큼 '왕의 벗' 또한 유일무이해야 함.
엔키두는 이미 없어서 쓸 일이 없을것 같으니 그리 깊이 생각해보질 못했는데, 아마 왕님->엔키두의 벡터하고는 조금 다르지 싶다. 신이 왕을 대적할 존재로 창조했으니 왕을 위해 생명을 얻은 것. 샴하트가 그를 왕에게 이끌었고 왕이 그를 벗이자 형제로 세웠으니, 아마 죽음도 왕을 위한 것이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만나자마자 싸운 것은 길가메쉬가 엔키두에게 있어 운명 그 자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음. 하지만 결국 운명에게 굴복당했고, 그 뒤 운명에 순응하기로 한 듯. 왕은 그런 것을 모르고 그저 처음으로 나타난 자신과 동등할 정도의 힘을 가진 존재가 신기하고 기쁜 것 같다.
엔키두는 일단 운명을 인정하고 나니 유일하고 강력한 벗이 소중하고 사랑스럽기 그지없음. 엔키두에게는 왕이 곧 운명이고 제 삶 전부인 셈이니까. 또한 그 벗이 자신을 무엇보다도 소중히 여긴다는 사실도 기뻤을 듯. 그 과정에서 왕이 원하기에 삼목을 베고 훔바바와 싸우고 왕을 지탱하고, 왕이 거부했기에 이슈타르와 하늘의 큰 황소와 맞섰을 것 같다. 이 무슨 왕님바라기...
엔키두도 마찬가지로 왕님이 호의적인 모든 감정의 대상이고, 거기에는 성애까지 포함된다. 왕님 또한 마찬가지라서 왕님과 엔키두가 성교까지 갖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흐름이었을 듯. 양쪽 모두 서로가 무엇보다도 소중한데 뭐가 문제냐는 입장이겠지. 엔키두는 아마 왕님이 이슈타르의 구애를 받아들였다면 좀 걱정은 하면서도(전적이 전적이니) 왕의 결정이니까, 하고 따랐을 것 같음. 왕이 거부했기 때문에 적으로 규정했을 뿐. 그러니까 마찬가지로 왕이 누군가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고 해도 신경쓰지 않을 것 같다(그런 일이 있을 수 없다는 건 제쳐놓고). 왕의 여자, 왕의 신하, 그런 건 여러 명 있을 수 있겠지만 왕의 벗은 오로지 자기뿐이니까.

언금의 경우 왕님은 오롯이 초월자임. 영령이라서가 아니라 속성 자체가 그렇습니다. 키레에게 있어 왕님은 서번트이기 이전에 어머니이고 목자이며 (유열의) 스승이고 자신에게 답을 보여주는 구세주임. 이십여년을 극기와 자계로 버텨오면서 추구하던 길에서는 깨닫지 못했던 자신의 본성에 지침을 내려주고 해방시켜 준 구원자임. 그렇기에 왕님이 지극히 충동적이며 제멋대로이고 변덕스럽고 때로 잔인하기까지 한 존재라는 것을 알지만 거기에 이끌리고 따를 수밖에 없음. 그 행동이 또한 자신의 유열에 맞닿아 있기 때문에. 그래서 키레는 왕님이 거기 있어주고 지켜봐주며 자신을 긍정해 주기만 하면 됩니다. 자신을 부정하지 않는 이상 무엇을 해도 상관없음. 모성을 갈구하듯 왕님을 요구하는 날은 있어도 왕님을 자신의 소유라거나, 자신에게만 묶어둘 수 있는 존재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 같다. 어쩌면 그건 한 번 죽었던 자신을 성배의 진흙으로 되살리게 된 원인이 왕님에게 있으니 마력 패스와 영주가 소멸하지 않는 한 왕님이 자신을 떠날 일은 없으리라고 여기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페스나를 안해봤으니 키레를 뭐라 더 단언하기는 어렵네... 아무튼 왕님을 가장 가까이 여기면서도 또한 가장 신성시하는 것은 키레일 듯.
왕님에게 키레는 꼭 집어 말하자면 <제 아이>. 자신이 인정했고 키웠고 개화시킨 악의 꽃. ...키레한테 꽃이라니 말도 안 되는 비유 같지만 대충 그렇다는 겁니다. 자신의 흥미를 끌 정도의 소재를 가지고 있었고 자신이 그것을 화려하게 피워냈으니 또한 그 종말까지 지켜보아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지고 있을 것 같다. 고통에 이끌리는 키레의 본성을 깨닫게 한 후 그것이 어떤 식으로 살아가고 어떤 식으로 파멸을 맞이할지가 또한 왕님의 유희고 왕님의 (묘한) 책임감이었을 듯. 일단 페제 시점에서는 거기까지.
하지만 부모가 아이를 키우면서 자신도 성장한다고 하듯이 십여 년 가까운 시간을 함께 보냈는데 거기에 일종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리도 없고, 키레는 언제나 곁에 머무는 자신의 신―손을 뻗으면 언제나 응답해주는 그의 신에게 애욕이나 일종의 집착을 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자신의 그런 '변질'이 고귀한 왕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 오히려 왕이 그에게 애정을 갈구하고 집착하는 상대를 비웃고 내리보는 성향이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에 끝까지 그런 변화는 말하지 않음. 하지만 키레가 깨닫지 못하는 그의 속마음까지도 꿰뚫어보는 왕님이 그것을 눈치채지 못할 리도 없고, 왕님은 고통은 즐겨도 인간적인 유열과는 거리가 멀던 키레가 애욕으로 인한 유열까지 깨닫게 된 것이 조금 기꺼워도 좋겠다. 키레가 숨기려고 하니 대놓고 지적은 안 하지만 흥미진진하게 떠보거나 찔러보거나. 왕님에게 이끌리고 매혹되지 않는 존재가 없었지만 키레처럼 그것을 부정하고 숨기면서도 채 묻어둘 수 없는 갈망이 비쳐보이는 것은 나름대로 새로운 즐거움임. 그리고 그런 식으로 십여 년을, 겉으로는 변화 없지만 속으로는 치열하게 불태우며 지냈으면 좋겠다. 나중에 5차 성배전쟁 즈음에 합류한 랜서가 네놈들은 대체 어떻게 되먹은 관계냐고 이해를 못 하고 답답해할듯.

이스길이야 뭐 별 거 있나요... '결코 정복되지 않는 존재'에 대한 정복왕님의 정복욕을 팍팍 자극하는 영웅왕이 앞에 있는데. 하늘 아래 두 왕이 없듯이 둘은 한쪽이 굴복할 때까지 결코 공존하지 못하고 끝없이 물고뜯겠지. 전장에서도 대화에서도 술자리에서도 침대(?)에서도. 극과 극은 통한다잖아요?′ㅅ`
Posted by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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