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단순한 점막 접촉
카테고리 없음 2014. 1. 1. 22:59 |키스의 수위가 쪼금 올라간 듯한 건 아마도 기분 탓(나의)
시로에가 <원탁회의>이외의 장소에서 크러스티를 만나는 일은 거의 없다. 애초에 외출하는 일부터가 드문 것이다.
그러니 지난 번의 충격적인 사건이, 만날 일 없이 흘러간 시간 속에서 어느샌가 상당히 흐려져 있었다고 해도 시로에를 탓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
"어라, 시로에 군."
생산계 길드 연락회에 볼일이 있어 길드 회관에 들른 시로에는 2층에서 내려오는 남자를 보고 멈칫했다. 흔치 않은 큰 체구에 모래색 머리칼, 안경을 쓴 이지적인 외모.
<원탁회의>의 의장이기도 한 그가 길드회관에 있는 것 자체는 이상한 일이 아니었지만, 지금의 시로에에게는 가능하면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 1순위다. 하지만 상대도 그렇게 생각할지 어떨지. 지난 번의 키스 사건이 생생하게 머릿속에 재생되어 지금 당장 뒤로 돌아 도망치고 싶은 시로에였지만, 자신이 도망칠 이유는 없다는 자존심과 여기서 도망치는 모습을 보이면 크러스티를 한층 더 재미있게 만들 뿐이라는 판단이 발을 잡았다. 그렇다고 가까이 갈 생각이 드는 것도 아니라서, 시로에는 짧게 고개를 숙여 목례하고 원래의 목적인 생산계 길드 연락회 사무실 쪽으로 향했다. 볼일을 마치고 나올 무렵에는 크러스티가 없기를 바랄 뿐이었다.
물론 그런 바람이 이루어질 리도 없었다. 시로에가 사무실에서 볼일을 마치고 나왔을 때, 로비에서는 크러스티가 무척이나 상쾌한 얼굴로 싱글싱글 웃으며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아까는 함께 있던 타카야마 미사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이 남자가 무언가 억지를 부려 그녀를 떼어낸 것이 틀림없었다. 저도 모르게 새어나오는 한숨을 애써 억누르며 시로에는 힘없이 그쪽으로 향했다.
"무슨 볼일이라도 있으신가요? 일부러 타카야마 여사까지 돌려보내고."
"눈치가 빠르군요. 그녀에게는 서류 전달을 부탁해 두었습니다. 할 얘기도 좀 있고 해서."
"지난번 같은 장난은 사양하겠습니다."
"장난이 아니라고 말했는데도. 뭐, 그렇다고 해 두죠."
크러스티는 한발 앞서 계단을 올라갔다.
각 길드에 대여된 길드홀 외에도 길드회관에는 작은 방들이 잔뜩 있다. 1층의 방 대부분은 생산계 길드 연락회가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적당하지 않지만, 그밖의 빈 방이라면 소유권은 기본적으로 길드회관의 소유자인 시로에에게 있다. 정말 뭔가 수상한 일이 생긴다면 그때는 공사혼동이기는 하지만 일시적이라도 이 남자를 출입 금지 리스트에 올려 주겠다고 결심하고, 시로에는 그 뒤를 따랐다.
크러스티가 선택한 방은 남향의, 커튼이 드리워진 작은 방이었다. 오후의 티타임을 지난 지금 시각에는 햇빛이 제법 기울어져 긴 그림자를 그리고 있었다. 뒤따라 들어온 시로에는 잠깐 문을 닫을까 말까 망설였지만, 방은 별도의 존이 되는 셈이니 열어 놓아도 의미는 없다. 주의깊게 머릿속의 리스트를 확인하면서 시로에는 문을 닫았다.
"이야기라니 뭔가요?"
"음, 실은 이 세계에서의 종족적 특성에 관해 다소 궁금증이 생겨서."
종족적 특성? 시로에는 고개를 갸웃했다.
"묘인족이나 호미족에게는 귀와 꼬리의 감각이 있는 것 같더군요. 어떤 느낌인지는 설명으로밖에 알 수 없지만, 원래 자신의 몸이었던 것 같은 느낌이라던가."
"아, 냥타 반장님도 그렇게 말했었죠. 꼬리도 귀도 수염도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다고."
"외견상 특징이 드러나는 종족은 그렇습니다만… 시로에 군은 하프 알브였죠?"
"예, 겉으로는 휴먼과 별 차이가 없지만. …그게 왜요?"
하프 알브는 마법적 적성 이외에 특기할 만한 점은 딱히 없었기에, 시로에는 지금까지 설정된 자신의 종족에 대해 특별히 의식한 적이 없었다. 어째서 종족적 특성에서 하프 알브로 이야기가 연결되는지 바로 짐작하지 못하고 시로에는 크러스티를 올려다보았다.
"지난 번의 치료 때 깨달은 점입니다만, 하프 알브의 혀에 나타나는 문양이──."
아직 크러스티의 말은 끝나지 않았지만 혀의 문양이라는 부분에서 지난 번의 사건을 떠올리고 시로에는 조금 멈칫했다. 얼굴이 붉어지지는 않았나 신경이 쓰였지만, 다행히 큰 변화는 없는 것 같아서 시로에는 짧게 안심했다. 크러스티는 그런 시로에의 태도를 눈치챈 것 같았지만 특별히 반응을 보이지 않고 말을 이었다.
"무언가 마력적인 반응으로 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조금 신경이 쓰여서요."
"에? 그야 마력과 관계가 있다면 있겠지만… 저는 특별히 다른 감각을 느낀 적은 없는데요."
"흐음. 자신에게는 반응하지 않는 건지, 다른 종족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러워서 의식하지 못하는 건지."
"반응?"
팔짱을 끼고 무언가 생각하는 듯한 크러스티에게 시로에도 궁금증이 생겼다. 지금까지는 그저 있을 뿐 어떤 감각도 느껴지지 않아서, 양치질을 할 때나 가끔 깨닫고 그러고보니 하프 알브였지 하고 상기하는 것 외에는 있다는 것조차 잊곤 하는 그 문양이 대체 어쨌다는 것일까?
시로에의 궁금증을 깨달은 크러스티는 쓴웃음을 짓고 설명했다.
"지난 번에 느낀 점입니다만, 시로에 군의 혀에 닿았을 때 뭔가 찌릿한 느낌이 들기에. 항상 그런 느낌이라면 상당히 번거롭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만, 아무래도 본인에게는 자각이 없는 모양이군요…."
"……."
크러스티의 다소 구체적인 해설에 시로에는 이번에야말로 지난 번의 사건을 제대로 떠올리고 말아서, 절로 뺨이 달아오르는 것을 억제하지 못하고 약간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어디까지나 치료 행위였다는 듯 의사라도 된 것처럼 담담하게 설명하는 점이 더한층 얄밉다.
시로에가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는 동안 크러스티는 뭘 혼자서 납득한 것인지 한 손을 턱에 대고 생각하다가 문득 "스스로는 알 수 없는 거라고 한다면" 하고 중얼거렸다. 어쩐지 불길한 예감에 시로에가 멈칫 몸을 굳힌 순간에는, 이미 어깨 위에 크러스티의 손이 올라와 있었다.
"……!!"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당하고 마는 자신의 학습 능력 부족에도 기가 막히지만, 그보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이 남자의 터무니없는 행동이다. 조금 아래에 있는 시로에와 높이를 맞추기 위해 약간 몸을 숙이고 위에서부터 아래로 향하는 키스는 아래쪽에 있는 시로에에게는 약간 불리하다. 밀어내려고 들어올린 왼손은 크러스티의 오른손에 잡혀 가로막히고, 크러스티는 남은 왼손으로 시로에의 머리 뒤쪽을 잡은 채로 지난번보다도 한층 깊게 시로에의 입 속을 침범했다.
입술, 입천장, 양쪽의 치아와 잇몸까지 구석구석을 크러스티의 혀가 훑고 더듬는다. 혀의 문양을 확인하겠다는 것이 핑계가 아니라고 주장하기라도 하려는 듯 혀에 얽혀드는 감각은 지난번보다도 끈질기고 섬세했다. 문양이 새겨진 위쪽을 훑듯이 확인하고 톡톡 건드리듯 더듬고는, 빠져나가려고 애쓰는 혀를 휘감고 혀끝부터 뿌리까지를 충분히 맛본다. 머리가 고정되어 도망치지도 못하는 시로에는 그저 밭아지는 숨을 견디며 그 유린을 고스란히 받아내는 수밖에 없었다.
평소 닿을 일이 없는 민감한 점막에의 자극과 호흡 부족 때문에 시로에의 뺨과 눈가가 빨갛게 달아오르고 생리적인 눈물이 배이기 시작했을 즈음에야, 크러스티는 못내 아쉽다는 듯 시로에의 혀를 놓아주고 마지막으로 입술 위에 가볍게 입맞춤을 남기고 떨어졌다. 해방된 시로에는 호흡 부족으로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몸을 크러스티에게 기댄 채로 한동안 호흡을 정돈하는 데만 전념해야 했다. 크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마침내 폐와 뇌에 충분한 산소가 다시 공급된 후에.
"…무슨 짓입니까, 크러스티 씨!!!"
항의의 외침은 크러스티가 예상한 그대로의 것이었기에 크러스티는 웃는 얼굴로 예정대로의 답변을 내놓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조금 확인을."
"이런 확인이라면 양해를 구한 뒤에도 늦지 않잖아요! 장난은 사양하겠다고 했는데."
하지만 이어지는 항의의 내용은 예상한 것과는 상당히 달라서, 크러스티는 무심코 시로에의 얼굴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젖은 눈가를 망토 자락으로 닦는 얼굴은 확실히 화나 있는 것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조금 부끄러워하는 것 같기는 했지만.
"…양해를 구한다면 괜찮다는 얘기입니까?"
"하프 알브의 종족적 특성을 확인하기 위한 거잖아요? 아마 저 하나로는 샘플이 부족할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렇다고 이런 짓을 아무한테나 할 수는 없고. 자발적으로 협조해 줄 사람이 있을지가 문제로군요."
"……."
점막에의 자극은 민감한 법이고, 손가락이나 다른 접촉으로도 확인할 수 있을 만큼 자극의 강도가 충분한지도 모르겠고. 아니, 그 이전에 그 '찌릿하다'는 건 어느 정도입니까, 하고 시로에가 다시 크러스티를 올려다보았을 때 크러스티는 어쩐지 굉장한 패배감을 느꼈다. 아마도 시로에의 호기심에 대해서.
"예측이 부족했던 것 같군…."
낮게 읊조리는 크러스티의 목소리에 시로에가 다시 그를 바라보았을 때 크러스티는 이미 평소와 같은 표정으로 빙긋 웃으며 시로에에게 실험의 결과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묘하게 구체적이고 생생한 묘사를 듣고서 지금 일어난 일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 시로에가 뒤늦게 다시 얼굴을 붉히는 것을 보고서야 크러스티의 이유 모를 패배감은 옅어져 갔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