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대형견의 인사
카테고리 없음 2014. 1. 3. 23:26 |
요 며칠, 시로에는 계속 고민하고 있었다.
고민의 원인은 물론 크러스티의 영문 모를 행동들에 대해서다. 왜 그는 자신에게 키스를 하는 것인지.
연애 경험치가 바닥을 기는 시로에라도 그것이 평범한 일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았다. 대체 크러스티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무엇 때문에 그런 행동을 반복하는 것일까.
정보가 부족했다. 시로에는 펜을 쥔 채로 책상 위에 엎어졌다. 이대로는 일을 할래도 진전이 되질 않는다.
이유를 물으면 답을 얻을 수 있을까. 아니, 그 전에 이유가 있기는 한 걸까? 그조차도 알 수가 없었다. 정말이지, 정보가 너무 부족하다.
시로에는 한숨을 쉬고 몸을 일으켰다.
시간은 벌써 점심때를 한참 지나 브레이크 타임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사실 시로에는 점심 식사도 아직이었다. 일이 바쁘기도 했고 고민하느라 먹을 계제가 아니기도 했지만, 길드홀에 혼자 남아 있다 보니 딱히 챙겨 먹을 마음도 들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라도 슬슬 뭔가 먹지 않으면 어딘가 요리인 길드와 모임이 있다고 나가면서도 계속 시로에의 식사를 걱정했던 냥타에게 야단을 맞을 터다. <기록의 지평선>멤버들의 위장의 수호자이기도 한 고양이 요리사는 길드 멤버들의 식생활 전반에는 깊은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모험자가 한두 끼 안 먹는다고 죽지는 않지만(기력이 다소 저하되기는 해도) 냥타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는 않았다. 시로에는 머릿속으로 근처에 있는 가게들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로에가 뭔가 메뉴를 결정하기도 전에, 디링디링 부드러운 방울 소리가 울렸다.
─시로에 군?
"크러스티 씨… 무슨 일 있나요?"
텔레파시 건너편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시로에가 내내 골치를 앓고 있던 상대, 크러스티였다.
첫마디가 인사 대신 이런 수상쩍은 의문이 된 것은 물론 크러스티라는 인물의 됨됨이 탓이다. 특히나 시로에에게는 요즘 점점 더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는 상당한 위험도의 요주의인물'이 되어 가는 중이었던 것이다. 그런 시로에의 내심을 짐작한 것인지, 텔레파시 너머의 목소리는 작게 웃었다.
─저는 어지간히도 신용이 없는 모양이군요.
"음…."
시로에는 대답이 곤란해 말꼬리를 흐렸다. 아니라고 말하기에는 크러스티의 전적이 의심스럽지만, 대놓고 그렇다고 말할 용기는 아직 없었다. 내심 기분을 상하게 한 건 아닌지 조마조마했지만 다행히도 크러스티는 그 점은 더 파고들지 않고 용건을 꺼냈다.
─조금 할 얘기가 있는데, 만날 수 있겠습니까?
"…텔레파시로는 안 되는 얘기인가요?"
─재결재가 필요할지도 모르는 서류를 미뤄도 된다면 얼마든지.
"……."
아무래도 일 얘기인 듯 하다. 식사는 조금 미룰 수밖에 없을 모양이다. 시로에는 늦은 점심 메뉴 고민을 머리 한구석으로 치워 두고, 크러스티에게 장소를 물었다.
크러스티가 지정한 장소는 아키바 중심부에서는 조금 벗어난 곳에 있는 찻집이었다. 현실 세계의 커피에 가까운 음료를 만드는 것으로 나름대로 알려진 가게였지만, 현실에서도 캔커피나 인스턴트 커피가 주였던 시로에에게는 큰 감흥이 없는 메뉴이기도 하다. 그런 이유로 낯설다면 낯선 장소이기는 했지만──눈앞에서 우아하게 잔을 기울이고 있는 남자에게는 이 부드러운 향기가 더없이 어울리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음료를 주문하고, 크러스티가 가지고 온 서너 가지 안건을 메모해 가면서 상의하고, 이야기하던 중에 시로에가 떠올린 몇 가지 아이디어를 다시 상의하고 보니 두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리필받은 따뜻한 커피(비슷한 음료)를 마시면서 그제야 한숨을 돌리고 있으려니, 이쪽도 마찬가지로 리필한 커피(비슷한 음료)를 마시던 크러스티가 문득 입가에 웃음을 띄운다.
"시로에 군은 정말로 일에 열심이군요."
"……?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뿐인데 열심이고 뭐고 없지 않을까요."
"시로에 군의 경우에는 그 책임감 때문에 안 해도 될 일까지 떠맡는 것도 있다고 봅니다만."
크러스티는 피식 웃으면서 의미깊은 시선을 시로에에게 던졌다.
"예를 들자면, 지금 같은 경우. 저를 경계해야겠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까? 두 번이나 그런 일이 있었는데."
"그…!"
크러스티가 가리키는 '그런 일'을 깨달은 시로에가 얼굴을 확 붉혔다. 이 남자는, 또 이렇게 사람을 놀릴 생각인 건지. 이렇게 일일이 반응하고 마는 것이 그를 더 재미있게 하는 일이라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시로에는 크러스티를 직시하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테이블 끄트머리를 향한 채로 조금 우물거리다가 가능한 한 평정을 가장한 채로 답한다.
"…그런 건, 개한테 물린 셈 치고 잊어버리기로 했습니다."
"개…인가요."
크러스티가 쿡쿡 웃었다. 눈앞의 당사자에게 대놓고 개라고 말한 셈이 되니 기분이 상할까 시로에는 말해 놓고도 흘끔흘끔 크러스티를 살폈지만, 어쩐지 "개라…" 하고 중얼거리는 크러스티는 무언가를 재미있어 하는 것처럼 보였다. 턱에 손을 대고 고개를 갸웃해 가며 생각하는 모습이, 조금 심술을 담아 투덜거린 셈이었던 시로에의 양심을 쿡쿡쿡 찔러 온다. 우물쭈물, 잔을 내려놓고 크러스티에게 사과의 말을 건네려던 찰나.
테이블에 잔을 내려놓은 손목을 크러스티가 불쑥 잡았다.
깜짝 놀란 시로에가 손목을 뒤로 빼 보지만 전사직의 힘에서 벗어나기란 불가능하다. 그대로 팔을 쭉 끌려 앞으로 기울어진 얼굴에 크러스티의 얼굴이 다가온다.
또냐, 하고 생각한 것은 처음뿐이었다.
지난 두 차례처럼 시로에를 침범하는 것이 아니라 확인하듯 부드럽게 부딪혀 오는 입술. 조금 건조한 그 입술에서는 방금 마신 커피의 향기가 났다.
다른 손으로는 시로에의 목 뒤를 감싸안고, 거듭해서 몇 번이고 각도를 바꾼 입술이 가볍게 시로에의 입술을 깨문다. 뜨거운 혀는 의외일 정도로 부드럽게 입술을 훑고 조심스럽게 입술 사이로 침입해 치열을 덧그렸다. 뒤섞이는 숨결에 저도 모르게 가슴이 뛴다. 자신의 것이 아닌 호흡이, 부드러운 향기가 입 안에 스며드는 것이 기묘하게도 달콤한 전율을 불러일으켰다. 코앞에 있는 단정한 얼굴이, 살짝 내리감은 눈의 모래색 속눈썹이 기울어진 햇빛을 반사해 금빛에 가깝게 빛나는 것을 시로에는 어쩐지 몽롱한 기분으로 바라보았다.
느릿하게 크러스티의 입술이 떨어져 나가고도 시로에는 한참이나 그를 바라보며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못했다.
피식 웃은 크러스티가 부드러운 손놀림으로 시로에의 뺨을 감쌌다. 길고 단정한 손가락이 그 뺨을 쓸어내릴 때에야 그 감촉에 시로에는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얼굴을 새빨갛게 붉혔다.
"크, 크, 크러스티 씨!!"
한순간에 지금 일어난 일과 자신의 반응을 상기하고 머릿속이 포화 상태가 된 것이리라.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뻐끔뻐끔 간신히 그 말만을 뱉어낸 시로에에게 크러스티는 빙긋이 웃어 보였다.
"개라고 하기에, 개다운 인사를 해본 것 뿐입니다만?"
"으……!!"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이제는 스스로조차 믿을 수가 없어졌다. 시로에는 머리를 싸안고 테이블 위에 털퍽 엎드렸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내려놓았던 잔을 다시 들어올리는 크러스티가 더없이 원망스럽다. 입 안에 맴도는 커피 향기를 곱씹을수록 기억과 감촉이 선명해져서 시로에는 점점 더 고개를 들 수 없게 되고 말았다.
가게에 감도는 커피 향기가 아까보다도 달콤한 듯이 느껴지는 것은 과연 어디까지가 기분 탓일까.
이제 와서 말인데 둘 다 안경캐인데 안경... 닿ㅈ... ...모른척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