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을 발견한 것은 우연이었다.
사냥터에서 돌아오던 길, 막 아키바에 들어선 아이잭은 무심코 시선을 돌리다가 시야 끄트머리에 무언가 하얀 것이 펄럭이는 것을 보았다. 뭔가 싶어 눈을 가늘게 뜨고 다시 보니 확실히 눈에 익은 물체다.
아이잭은 무심코 뒷머리에 손을 대고 긁적였다. 설마, 잘못 본 거겠지? 그 녀석이 혼자 저런 곳에 올라갈 리도, 저렇게 한발 잘못 디디면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너덜너덜한 폐허 끝에 아무렇게나 걸터앉을 리도 없지 않은가. 그렇게 제 눈을 의심하며 몇 번이나 다시 보았지만, 물론 그런다고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변하지는 않는다.
…아무래도 진짠가 보다. 일곱 번쯤 눈을 비비고 다시 본 다음, 아이잭은 성대하게 인상을 찌푸렸다.
잠깐 들를 곳이 생겼다고 함께 돌아오던 길드원들을 먼저 돌려보내려고 했더니 이 멍청한 녀석들은 무슨 생각을 한 건지 휘파람을 불며 야유를 날려댔다. 아니라고, 이 멍청이들아!! 하고 소리를 쳐 봤지만 제대로 알아먹은 놈들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하여튼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빌어먹을 놈들 같으니. 그렇게 입속으로 궁시렁대면서도 마음이 급한 아이잭은 걸음을 서둘렀다. 해는 벌써 서쪽으로 기울어 아키바에 드리워진 그림자는 한없이 길다.
낡고 부서진 <신의 시대>의 콘크리트 건물은 그 석양 속에서 한층 더 을씨년스럽게 서 있었다. 그 녀석, 대체 이런 곳엔 무슨 볼일이지. 갈라지고 부서져 곳곳에 골조가 드러난 건물은 무성한 덩굴과 잡초에 휘감겨 있었다. 사람이 지나다닌 듯한 흔적은 거의 없다. 엘리베이터가 작동할 리도 없고 오로지 계단으로만 올라가야 하는데, 그 계단조차도 곳곳이 부서져 있어 위험하기 짝이 없다. 아이잭 자신의 체중과 갑옷의 무게가 조금 걱정스러워질 정도였다.
최근에는 이주해 오는 대지인들 덕에 아키바의 생활권도 상당히 확대되어 이 정도로 낡은 빌딩은 외곽 정도에밖에 남아 있지 않은데, 왜 굳이──까지 생각하고 보니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바로 요전번의 <원탁회의> 정례회의가 끝난 후 회의실에서였다. 말을 꺼낸 것은 카라신이었다. 그저 이야기하다가 문득 떠오른 것을 아무 생각 없이 물어보았다는 투의 질문이었다.
"그러고보니 시로에 씨. 얼마 전에 외곽 쪽에 있는 높은 빌딩, 거기 올라가지 않았어요?"
머리도 꼬리도 없는 뜬금없는 장소 지정이었지만 공교롭게도 시로에는 짚이는 바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는 조금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카라신에게 되물었다.
"에? 카라신 씨, 그걸 어떻게."
"아뇨아뇨, 우리 길드 멤버 하나가 그 근처에 산다는데, 언뜻 시로에 씨 같은 사람을 봤다고 하길래. 드문 일이라서 기억했다나요. 그 빌딩에 뭐라도 있나요?"
"아뇨, 딱히 그런 건…."
시로에는 어쩐지 대답이 곤란한 듯 약간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곤혹보다는 민망한 얼굴 같다고 아이잭은 생각했지만, 그거야 본인밖에 모를 일이다. 그래도 자타공인의 분위기메이커 카라신이 이 화제를 꺼리는 듯한 시로에의 분위기를 모를 리도 없다. 그 화제는 거기서 끊어지고 이야기는 곧 다른 화제로 옮겨졌다.
그렇다면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니라는 건가. 높은 빌딩에서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고 있는 건가? 그것도 '안경 쓴 능구렁이'가 말하기를 꺼릴 정도로 은밀하고 중대한 일이──. 플레이어 타운인 아키바에서 그런 큰 일이 생길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지금은 전에 알던 무엇에도 섣불리 확신을 가질 수 없는 시기이기도 하다. 옥상으로 향하는 아이잭의 걸음이 아주 조금 신중해졌다.
저녁 무렵의 붉은 석양이 비쳐드는 옥상은 계단과 마찬가지로 무성한 덩굴과 잡초에 뒤덮여 있었다. 아이잭은 소리를 내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그 위로 발을 디뎠다. 무거운 갑옷은 도무지 이런 일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내심 불평은 했지만, 이제 와서 돌아갈 수도 없는 것이다.
목표인 흰 그림자는 옥상의 서쪽 끝, 석양이 잘 보이는 곳에 걸터앉아 있었다.
건물의 한쪽 귀퉁이는 이미 무너져 아래층이 들여다보일 지경이었지만, 올라오고 보니 의외로 튼튼한 것처럼 느껴졌다. 골조가 잘 되어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한구석에 떠올리면서 아이잭은 조심스럽게 녀석에게로 다가갔다. 때때로 하얀 옷자락이 나부끼고, 석양을 붉게 반사하는 머리카락이 바람에 흔들렸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아이잭 정도의 덩치가 접근하는데도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어이, 능구렁ㅇ…으억?!"
"으앗!"
별안간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깜짝 놀라 저도 모르게 몸을 움직인 그가 위태로운 건물 끄트머리에서 휘청 균형을 잃었다. 당연하지만 난간 따위는 없는 폐빌딩, 떨어지면 그대로 지면에 곤두박질이다. 아이잭은 기겁해서 손을 뻗었고, 간발의 차로 흰 로브의 목덜미를 커다란 손으로 잡아채는 데 성공했다.
간신히 추락사의 위기에서는 벗어났지만 양쪽 다 급격히 빨라진 심박을 진정시키지는 못했다. 아이잭은 시로에의 목덜미를 움켜잡은 그대로 잡아먹을 듯이 소리쳤다.
"간 떨어지는 줄 알았다, 이 자식아!!"
"갑자기 말을 거니까 놀라서 그렇죠!"
물론 시로에라고 밀리지 않는다. 놀란 기세를 몰아 일단 버럭 대꾸해 놓고, 기가 막힌 아이잭이 할 말을 찾지 못하는 사이 시로에는 아이잭의 손에서 옷자락을 풀어내고 안경을 바로잡았다. 힘껏 잡히는 바람에 구겨진 옷자락을 살짝 매만지면서 아이잭을 다시 보고 시로에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아이잭 씨가 여긴 어떻게…? 올라오는 게 쉽지는 않았을 텐데요."
"그 말 그대로 돌려주마, '안경 쓴 능구렁이'. 전사직도 올라오는데 애먹는 폐빌딩엔 무슨 볼일이냐? 이렇게 사람도 없고 위험한 곳에."
"그건, 그냥 좀…."
이번에도 역시 시로에는 곤란한 듯 말을 흐렸다. 하지만 이 몸에게 이 고생을 시킨 후다. 아이잭도 쉽게 물러나줄 마음은 없었다. 진짜 이유를 말할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실컷 분풀이는 해줘야겠다 이 말씀이다.
"뭐야, 누구한테 말 못할 일이라도 꾸미고 있냐? 또 아키바에 대대적 지각변동이라도 일으켜보려고?"
"그런 짓은 안 합니다. 아키바는 충분히 안정돼있잖아요."
"…안정돼있지 않으면 할 거고?"
"…그야 상황에 따라서는."
진지한 답이 돌아와서 아이잭은 그만 할 말을 잃었다. 무서운 놈. 어쩐지 추궁하려던 것도 맥이 빠져서 그는 조금 전까지 시로에가 바라보고 있던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래서, 진짜는 뭔데? 이런 곳에 혼자서."
"꼭 이유가 있으란 법이 있나요."
"네놈이 아무 속셈 없이 움직일 거라고는 믿기지가 않아서 그런다."
"…아이잭 씨, 정말로 절 뭐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아키바의 흑막."
"……."
이런 대화, 전에도 했던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어떻게 해서라도 답을 듣고야 말겠다는 듯한 아이잭의 태도에 시로에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이번에는 조심스럽게, 옥상 끝과는 조금 거리를 둔 곳에 서서 시로에는 석양에 물든 아키바의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높은 곳에서 경치를 바라보는 걸 좋아할 뿐입니다."
"…그것뿐?"
"……."
고작 그걸 네녀석이 그렇게 말하기 꺼려한단 말이냐, 하는 심경을 시선에 담뿍 실어 아이잭은 시로에를 뚫어져라 쳐다봐 주었다. 우물우물, 긁적긁적, 정말이지 민망한 듯이 필사적으로 그 시선을 피하며 먼 곳을 바라보던 시로에는 아이잭의 시선이 도무지 압력을 거두지 않자 마침내 자포자기해서 내뱉었다.
"원래 세계에서는 도쿄타워에라도 올라가지 않는 이상 이런 풍경은 못 보잖아요! 그렇게 자주 높은 곳을 찾아다닐 수도 없고, 이 세계만큼 체력도 좋지 않으니까…."
"……."
그러고보니 확실히 이런 경치는 드물긴 하겠지만 높은 곳이라면 딱히 그밖에도──거기서 아이잭은 시로에를 다시금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이 세계의 체격과 완전히 일치하지야 않겠지만 적어도 현실 세계의 모습과 이 세계의 모습이 비슷하다고 한다면.
"뭐야, 너 진짜로 방구석 폐인이었냐."
"아니거든요. 이유도 없이 나돌아다니지 않을 뿐입니다."
"핑계대지 마, 방구석 폐인. 어디를 봐도 훌륭한 방구석 폐인이잖아."
"폐인 폐인 하지 말아 주시겠습니까. 애당초 아이잭 씨야말로 하루 평균 접속시간으로 따지면 저 이상의 폐인일 텐데요."
"……."
"……."
피차 아픈 데를 찔린 두 사람은 입을 다물었다.
해는 거의 지평선 아래로 사라진 후였지만 서쪽 하늘은 아직 엷은 보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아키바의 거리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와 소란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다가,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피식 웃고 말았다.
"뭐, 네가 높은 곳을 좋아하건 낮은 곳을 좋아하건 상관은 없지만. 다음부턴 웬만하면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있는 데로 하지 그러냐. 진짜로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다고."
"반 정도는 아이잭 씨 탓이긴 하지만, 저도 이런 식으로 죽음을 경험하고 싶지는 않군요. 앞으로는 주의하죠."
시로에는 정중하게도 야유를 섞는 것은 잊지 않고 대답했다. 그러고보면 이 녀석의 이런 일탈을 길드 멤버들은 알고 있으려나.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 어새신 꼬맹이 정도는 붙어올 법도 한데 어디서도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면 아마도 길드 멤버들에게도 비밀로 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거 슬쩍 언질을 넣어 두는 편이 좋을까──하지만 이 녀석한테도 나름대로 길드 마스터의 체면이라는 게 있을 테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고민한 아이잭은 문득 손바닥을 탁 쳤다.
"너, 다음부터 어디 올라갈 땐 나한테 연락해라."
"예?"
너무나도 뜬금없고 갑작스러운 말에 시로에는 저도 모르게 얼빠진 소리로 반문했다. 하지만 아이잭은 재미있는 생각이라도 떠올렸다는 듯 팔짱을 낀 채로 큭큭 웃을 뿐이었다.
"나도 높은 곳은 좋아하는 편이고, 너보다야 반사신경도 동체시력도 좋겠지. 안전장치가 돼 주겠다, 이 말씀이시다."
"아뇨, 사양하고 싶습니다만."
"너희 길드 멤버들한테 이른다."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의 협박이네요."
"먹히면 됐지."
거기에는 할 말이 없어 시로에는 입을 다물었다. 꾸욱 미간을 찌푸리고 고민하는 표정을 짓는다. 생각에 빠졌을 때 자주 보이는 그 표정을, 사실 아이잭은 꽤 좋아했다. 물론 가장 열받는 것은 상대를 도발하는 듯한 태연한 얼굴이고.
어쨌든 이번 제안은 이 녀석의 특기 분야인 '선택지가 하나밖에 없는 제안'이라는 녀석이다. 아이잭은 시로에에게 한 방 먹여줬다는 사실을 흡족해하면서 기꺼이 이 녀석이 항복 선언을 하기를 기다렸다.
14화에서 시로에가 발코니 난간에 밖으로 앉아 있었던 게 너무 의외라서 혹시 높은 곳 좋아하나...? 싶어 생각해봤더니 그전에도 어쩐지 크레센트 문 때라던가 길드회관 꼭대기라던가 높은 곳에 종종 출몰했었다?
그래서 내 안에선 어쩐지 높은 곳을 좋아하는 걸로 정착한 시로에 씨.
그냥 높아서 좋아한다기보다는 지원직이라 멤버 전원을 시야에 넣어야 하니까 넓게 내려다보이는 높은 곳을 좋아하게 된 게 아닐까나 하고 생각합니다. 티파티 때부터 소란을 가장 뒤에서 지켜보는 타입이기도 한 것 같고(=뒷정리 담당).